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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죽은 이유 (삿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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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삼손이 죽은 이유 (삿16:1-4)

더아름다운교회 송정선 목사

송정선 목사.jpg

성경의 인물 중에 삼손의 이야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블레셋처럼 밖으로부터는 코로나 19사태, 동성애, 신천지, 이슬람 등의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안으로는 기독교인들의 일탈과 죄악들로 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전 국가적인 비난과 젊은이들로부터 불신의 종교가 되어 가고 있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지 못할 때 교회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서 조차 많은 혼돈이 일어나고, 의견충돌과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오늘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가정 환경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이 남달랐습니다. 마노아라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서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이 삼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는 것이기에 부모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여인과 결혼을 해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삼손이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며, 농작물을 불사르고 심지어 자기 멋대로 이혼을 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그에게 승리를 주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지지하고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던 삼손이 사사기 16장에서 어느날 갑자기 비참하게 죽습니다. 사사로써 20년동안 아무 문제 없던 삼손이 갑자기 20년 만에 죽음으로써 사사로써의 사명을 마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의 원인을 들릴라의 거짓말에 속아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머리카락이 힘의 근원인데 그 머리카락이 잘리워져서 죽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었지 죽음의 원인이 되지 못 합니다. 왜냐하면 삼손은 하나님이 항상 지켜주셨기 때문에 사사기 16장의 들릴라의 등장과 유혹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만 한다면 굳이 죽게까지 될 문제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의 물음은 한가지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영적인 질문이 됩니다.

  

‘하나님은 왜 이전처럼 삼손을 지켜주지 않으셨을까요 ’

 

삼손의 생애를 기록한 사사기 13, 14, 15, 16장 중에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사사기 16장 4절의 ‘이 후에’일 것입니다. 정확히는 ‘이 일 후에’로 번역될 수 있는데, 바로 그 일이 삼손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이 무엇일까요? 독해적으로 그것을 알려면 바로 앞의 1-3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사기 16장 1-3 절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 즉 삼손이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소적으로는 가사에서의 일과 헤브론에서의 일입니다. 블레셋의 수도 가사에서는 기생과의 동침 후 성문을 무너뜨린 일이 있었고, 헤브론에서는 고향으로의 귀환 행렬, 즉 승리의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먼저 기생과의 하룻밤 동침과 성문을 무너뜨린 일은 삼손의 윤리적인 죄, 곧 육체의 죄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일은 그전부터 즉 13,14,15장에도 늘 있던 일이었습니다. 삼손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별반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삼손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삼손이 잘해서, 윤리적으로 완벽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삼손의 인격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블레셋 사람을 비롯하여 그의 친구와 가족과 아내에게 모두 알려진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모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몰라서가 아니라 아심에도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셨기 때문에 20년 동안 사사로써 쓰임받은 것입니다.

  

정리하면 삼손이 삼손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의 용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육체적인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삼손은 그 전에 이미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의 육체적인 연약함과 자신의 힘을 뽐내기 좋아하는 어리석음은 20년 내내 반복되는 일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과거의 우리의 허물을 하나님이 미처 몰라서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달래거나 속여서 지금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부정하는 불신앙입니다. 이같은 불신앙은 도덕적인 그 어떤 죄보다 무서운 영적인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헤브론까지의 승리의 퍼레이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왜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까요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서 그 밤의 현장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당시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은 모두가 잠든 조용한 시간입니다. 삼손 역시 인기척 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삼손을 원수처럼 여기는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띄면 안되기에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삼손이 찾아 들어가고자 하는 집이 기생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생집에 들어가면서 대 놓고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랬던 삼손이 한밤 중에 자다 말고 스스로 벌떡 일어나 소동을 일으킵니다. 왜 일어났으며, 또 왜 소동을 일으켰을까요 상식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손은 그 밤에 자신의 죄를 숨길 방법을 궁리하던 중 새벽에 묘안이 떠오르자 지체없이 행동한 것입니다. 바로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왔다, 블레셋에 원수를 갚고 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삼손은 가사에서 제일 유명한 곳, 눈에 띄에 장소에 가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요란스럽게 소동을 일으키듯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전리품들을 들고 자랑스럽게 80km나 떨어진 고향 땅 헤브론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느냐며 외침이요, 와서 보라는 간증이요, 자랑이었습니다. 자신의 전리품을 자랑하며 무려 가사에서 80km 떨어진 하나님의 산 헤브론의 꼭대기에 이르도록 승리의 퍼레이드를 한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정욕과 죄악을 포장하여 감춘 것입니다. 그런 그의 계획은 모두가 속아 넘어갈 만큼 완벽했고, 또 그의 손에 들려진 증거인 전리품들 앞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채우고자 가사에 내려가 놓고는 그것을 감쪽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왔다고 포장하는 삼손의 가증함에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냥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면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하나님을 속인 그 죄에 하나님은 진노하신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삼손의 손에 들린 전리품과 승리의 퍼레이드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로 삼손의 의가 되었고, 그 일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 퍼레이드에 모든 백성은 속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덮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만은 속일 수가 없었다고 경고합니다. 

 

4절의‘이 후에’일어나는 사건들은 소름끼치도록 하나님과 삼손을 대비시킵니다. 

 

먼저 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처럼 삼손은 여전이 ‘전과 같이’라는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 너무나도 순진한 모습뿐입니다. 옥에 갇혀 눈이 뽑히고,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음에도 ‘여호와의 영이 이미 떠난 것’자체가 얼마나 큰 일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머리카락만 자라기를 기다리는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희망 고문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까지 불러 일으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떠난 것이 언제일까 ’라는 질문을 품을 때 비로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라는 단어는 과거의 어떤 시간과 사건을 뜻하기 때문이다. 바로 1-3절의 사건을 ‘이미’가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떠나 갔습니다. 이것은 삼손이 가사에 내려가서 기생을 취해 자신의 정욕을 채운 죄 자체보다 이를 교묘히 감추고자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명분으로 헤브론까지 퍼레이드를 펼친 죄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모님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정말 두려워해야할 죄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일을 빙자하여 자기의 정욕을 채우고, 또 이를 옳게 보이려는 시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영적인 죄는 삼손처럼 과거의 출생이나 경력, 업적, 능력과 지위와도 상관 없으며, 심지어 어떤 기적과 신앙체험과 신앙고백의 유무와도 별개입니다. 삼손이 날 때부터 완벽해서 쓰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삼손은 육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용서로 살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히브리서의 고백처럼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그 앞에 드러나기에 언제든 죽어 마땅하나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죄인이 사는 것입니다.(히4:12-16)

 

오늘 사사기 16장에서 삼손의 죽음은 하나님의 즉결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짓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회개하고 삼손이 죽도록 시간을 주셨습니다. 회개함으로써 영원한 죽음을 피할 기회를 주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삼손은 눈이 뽑히고 사슬에 매여서야 평생 처음으로 환하게 이치를 꿰뚫어 보게 됩니다.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훗날 히브리서는 삼손을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합니다.(히11장) 삼손이 죽는 마당에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영생을 믿었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삼손이 지금 죽여달라고 말하면 안될 것입니다. 어떻게든 후일의 복수를 도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믿고 올린 회개의 증표로 육신의 생명을 기꺼이 드린 것입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 앞에 언제나 엎드리게 하시고, 세상의 선악의 기준에 속아 자기의에 취하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죄인임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사는 은혜입은 자임을 예배할 때마다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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