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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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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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의 행복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13면 김남준 목사칼라.jpg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들어가는 말

시편 65편은 다윗의 시로, 죄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었던 땅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되어 다시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여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를 경고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도가 누구이며 무엇으로 만족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성도의 세 가지 복

구약성경에서 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베라카의 복입니다. 이 복은 넓은 의미의 복으로, 일반 섭리를 통하여 받는 복을 가리킵니다. 아픈 곳이 없고, 부자가 되고,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 등이 베라카의 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쉐르의 복입니다. 이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영혼에 주시는 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복’은 아쉐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복 받기를 바랍니다. 아프지 않고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참으로 귀한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시는 아쉐르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없이는 변하는 사람이 없고,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아쉐르의 복인데, 시인은 이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복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여 당신을 아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누군가 하나님이 왜 너를 택하셨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이 왜 너를 선택하셨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단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택하셨다는 사실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택하신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혹시 좋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만족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힘든 일이 닥쳐올 때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올 때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을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을 선택하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이 선택하심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과의 친교를 누리는 복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한 후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고, 당신을 의지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이 복에 대해 모세는, 사명의 마지막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힘들고 어려운 일은 늘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 아닙니까? 단지 귀만 기울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반드시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갈 길을 알지 못한다면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할 만한 존재입니까? 우리에게 무슨 좋은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악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까이해 주셨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듯, 우리를 당신의 품에서 기르셨습니다.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셋째로, 공동체로 살게 하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한 몸으로 삼아 교회 안에 두셨습니다. 그곳에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며 서로 기대며 살게 하셨습니다. 누구도 홀로 자란 사람이 없습니다. 묘목이 아니었던 거목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라는 산에 심어진 씨앗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마다 햇빛과 비를 내려 주셨고, 우리를 향한 지체들의 돌봄이 있었기에 주님의 교회에 뿌리내리고 든든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홀로 인생길을 걸어야 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우리는 사람에게서 상처도 받지만 또한 위로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에 모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하였고, 누군가 실족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일처럼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아름다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고 가까이하셨습니다. 혼자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에 불러 한 공동체로 살게 하셨습니다. 시인은 이 아쉐르의 복을 누린 성도의 감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성전’은 ‘거룩한 왕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왕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데, 그 중심에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성전을 통해 행사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은 왕이 계시는 왕궁과 같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아직 솔로몬 성전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시 성전은 이스라엘이 광야시대에 만든 이동식 텐트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래도록 비바람에 시달려 거무튀튀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화려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텐트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초라한 텐트는 거룩한 왕궁이 되었고,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아름다움’은 ‘예쁘다’의 의미가 아니라 ‘선한 것들’, ‘좋은 것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모든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단지 물질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들을 향한 영적인 복을 성전에서 베푸십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선한 분이심을 알게 하십니다(시 34:8).

하나님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지만 당신의 백성들을 성전에서 만나주시길 즐기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전쟁에 처했을 때 왕들은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였고, 자식을 낳지 못한 한나는 그 고통을 성전에서 풀어놓았습니다(삼상 1:9-10). 

경건한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의 짐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내려놓았고, 다니엘은 왕 이외의 존재에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법령에 도장이 찍힌 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해 난 창을 열고 기도하였습니다(단 6:13).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 고난과 아픔을 하나님의 집에서 풀어놓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영광은 건물의 크기나 교인의 숫자, 교회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 그곳에 있고,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기에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향기로운 예배가 드려지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덧입기에 그곳은 특별합니다. 어려움과 시련을 만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지는 장소도 그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중합니다. 

막막한 인생의 벽 앞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마음의 짐을 풀었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서러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누구 앞에서 울었습니까?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하루를 버틸 힘을 받았습니까? 교회가 아닙니까? 우리의 수고와 눈물이 그곳에 있고, 우리의 기쁨도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그곳에서 나오고, 우리의 힘이 거기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러니 그곳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누리는 만족

하나님의 교회의 아름다움에 감격한 성도는 만족을 누립니다. 시인은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노래하는데, 이 구절의 히브리어 성경 직역은 이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성전의 좋은 것으로 배부르겠습니다.” 

‘배부르다’라는 것은 욕구하던 바가 충족되어 더는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생깁니다. 그러나 실컷 먹고 나면 더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목이 마를 때는 마실 것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한 사발의 물을 들이켠 후에는 물을 마시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배부르다’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장소를 인간의 마음에 두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향락을 통해서 잠시 그 공간의 결핍을 잊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갈급함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모든 불행은 하나님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영혼의 허기를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보려는 시도에서 나타납니다. 지성의 속임과 욕망의 강압에서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만 그것들로는 영혼의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았던 전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는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끝이 있다는 것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인간의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8). 

인생에는 항상 바라던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지 않던 일도 일어납니다. 인간의 욕망은 부풀어 오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에 격차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그 격차만큼 불안과 불만족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이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을 누립니다. 성도의 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그분에게서 오는 좋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있기에 분에 넘치는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기에 바라던 바가 좌절되어도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좋은 것들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오십니다(시 107:9). 그러므로 하나님을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그분을 사모하는 마음을 거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우리를 참된 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맺는말

인생의 방황은 기독교 신앙을 만날 때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사랑하는 교회를 만남으로써 마침표를 찍습니다. 좋은 것들을 공급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서 좋은 것들을 공동체와 더불어 누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많은 샘들을 만날 것이고(시 84:6),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시 23:4). 지친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힘을 얻고, 갈 길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진리의 빛을 볼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좋은 것들을 교회에 부어주시고, 교회의 지체들이 누리게 하십니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곤고한 날에 하늘을 향해 눈을 드십시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하늘 아버지를 만나길 사모하십시오. 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모든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참된 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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