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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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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나는 최선을 다 했어

이스라엘.jpg
전태규 목사(서광교회)

내가 고신일 감독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74년 3월 신학교 입학했을 때다. 그는 대의원인 내게 처음으로 자기 아버지가 감리교 고용봉 목사라는 말을 하였다. 아버지께 말씀 드리니 그분은 유명한 부흥목사라고 하셨다. 친구의 아버지가 유명하시니 나는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듯 그 어른이 친구의 아버님이라고 늘 자랑하였다.

 

지난 6월 20일 고인이 되신 고용봉 감독님의 ‘환송예배’를 드리면서 예배 순서지에 기록된 그 분의 약력을 알게 되었다.

 

고 고용봉 감독님은 강화에서 출생하셨고, 청년 때 수도사단에 입대하셨고, 6.25전쟁 참전 중 부상을 입어 국가 유공자로 제대를 하셨다. 그 후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소사중앙교회(현, 기둥교회)를 개척, 담임목사 취임과 기감 중부연회 감독을 마치신 후 자원은퇴를 하셨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유명하다는 분들의 그림자 뒤에는 그분이 살아온 남은 흔적들이 많기 마련이다. 

 

감리교계의 큰 어른으로 족적을 남기셨던 고 고용봉 감독님을 천국으로 환송해 드리며,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그분의 삶을 기리고자 한다.

 

그는 뼈 속까지 감리교 목사이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변화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는 서울에서 개척을 하고 목회를 하던 중, 우연찮게 부천에 가보게 되었단다. 그 당시  처참하고 참혹한 부천의 상황을 보고 이들과 함께 평생을 살겠다는 작정하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지금 기둥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웨슬리 한 사람의 변화가 감리교의 초석이 되었던 것처럼 한 사람의 결단이 한 지역과 교단에 미친 영향이 크다.

 

그는 복음을 전하던 부흥사이다.

 

가슴이 뜨거웠기에 ‘호렙산 선교회장’과 ‘감리교 전국 부흥단장’을 역임하였다.

 

그가 부흥회 강사를 초청할 때는 프로 강사보다는 젊은 강사를 초청하였다. 이유인즉 프로 강사는 성령보다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더 의지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가까운 충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감독님은 나에게 당신께서 살아오면서 후회되었던 세 가지를 말씀해주셨다.

 

“첫째, 꿈을 크게 갖지 못한 것, 둘째, 많이 배우지 못한 것, 셋째, 한 교회에서 오래 목회하지 못한 것” 내게는 오를 수 없는 큰 산처럼 보이던 그분의 말씀이 나를 깨워주셨다.

 

그는 저술가이다. 

 

‘주님이 그리워요’ 외 50여권을 저술하였다.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다. 

 

그는 감독을 지내셨으니 교계의 지도자이다. 

 

그는 또한 애국자이다.

 

고향이 강화인데도 국가유공자로 대우받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그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그분의 환송예배에서 우리는 다같이 그분의 동영상을 보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이것 밖에 없어”

 

조사를 읽은 박연순 장로는 코로나로 인해 왕래가 어려운 이때에 감독님마저 가시면 우리는 어찌 하느냐고 울부짖을 때 내 가슴이 찡하였다. 또한 영상에서 장손 성민목사가 할아버지가 쓰신 칼럼 중 일부를 소개하면서 한국에 나가면 증 손주와 제일 먼저 왕 할아버지를 찾아뵙고는 하였는데 이제는 찾아 뵐 수 없으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가족 인사에 나선 아들 고 감독도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나 높은 산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60이 넘어 총회에 가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로만 나를 보게 되는지, 어떻게 총회에 왔느냐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고신일 감독은 고등학생 때 선배의 유혹으로 담배를 피다가 정면으로 아버지께 들켰던 일을 회상하며 “마흔을 넘기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살면 어떻게 하느냐?”며 통곡하시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아버지께서 6.25전쟁 중 총상을 입어 병원에서 의사가 마흔을 넘기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회고했다. 늘 아들보다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셨던 아버지! 그래서 아들은 철들 때까지 아버지께서 누워서 주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끝으로 ‘주님이 그리워요’ 책에 나오는 그의 기도를 소개한다.

 

주여, 나는 주님과 같이 살고 싶은 그리움뿐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신 것 나도 기뻐하고. 주님이 슬퍼하신 것 나도 슬퍼하고. 

 

주님이 당하신 고난 나도 당하게 하소서. 

 

이때 주님의 부활의 영광이 내게 오고 주님의 승천이 내 승천이 되고 주님 재림 시에 내가 들림 당해 

 

그립고 그립던 주님을 만나 주와 더불어 영생복락 하게 하소서! 

 

오 그리운 주님! 어서 내게 오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임종 직전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그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마지막 주신 감독님의 선물만 같다.

 

감독님! 평생 그리워하셨던 주님 품안에서 다시 만나 뵐 때까지 영원히 안식하소서.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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