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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성취해 주시는 하나님

기사입력 2022.04.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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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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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역시 아담의 가정처럼 에덴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 삶으로 사망 가운데 있지 않는가?〉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언약이 성취되는가? 

     

    〈기도로만은 변화되지 않는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영적 눈이 말씀으로 떠져야 한다.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취되는 복이며, 맹인이 눈을 뜨는 은혜이다. 이 눈은 나를 보고 주를 보는 눈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에서 구원하러 오셨는가?〉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된 아담의 후손인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시험 만 오면 내가 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되어 상대방의 허물을 보는 자요, 비판, 판단하여 정죄의 영에 포로 된 자요, 심판, 재판하는 삶으로 율법의 저주아래 있는 나를 눈을 뜨자. 그리고 죄가 나로 시작 되었다고 피차 회개하자.

     

    〈간증〉 나는 첫사랑 회복을 할 수 있도록 말씀을 깨닫기 이전에 나는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다 지쳐버렸다. “더 이상 용서 못 하겠다.” “더 이상 못 참겠다”라고 사명까지 버려야 하는 영적 위기에 이르렀다. 그 때 상대방을 용서하고 사랑하려 노력하는 시간은 상대방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시간임을 알게 해 주셨다. 그와 같은 영적 시기는 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되어 시험이 올 때마다 내 죄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물만 보는 맹인이 되었음을 알게 하셨다. 이와 같이 영적 무지 상태로 아담과 하와처럼 상대방 탓하고, 마귀 탓 하는 사망 가운데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용서하고 사랑하려는 나의 영적 상태는 시험이 올 때마다, 나는 의인이며 ‘너는 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용서한다.” “내가 사랑한다.”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시간은 율법의 의를 십자가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성령의 법이 성취되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온전하지 못한 ‘목회자가 나 구나!~ 아내구나!~’하고, 용사하고 사랑하고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나는 용서받고, 사랑받고, 은혜를 입고 살아왔구나!’하고 엎드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재 잘못은 보지 못하고 시인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가? 내 의에 포로되어 강대방을 정죄하게 된다. 그 시간들이 성령을 소멸하는 시간이 되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성령의 법으로 내면 치유의 은혜를 입게 되어 인간관계 회복이 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시험이 올 때마다 원수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는 내면의 죄성을 보는 영적 눈이 떠지지 않으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다. 시험이 올 때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는다. 곧 언약이 성취되어 사랑의 계명에 순종을 하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자다. 그러나 시험이 올 때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되어 상대방을 탓하고, 마귀 탓을 하며 원망, 불평하고 상대방의 허물을 논하며 대적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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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으로 나를 보는 영적 눈이 떠져야 한다. 성경은 선악과를 먹은 나를 보는 거울이다.〉 애굽의 시기에 있던 백성들이 출애굽의 은혜를 입어 이른 비의 성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말씀으로 거듭난 영적 시기가 아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광야의 시기에 ‘만나’(율법)가 양식이 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상대방 허물을 보고 원방하고 있는 시기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저주에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 

     

    〈최초의 선악과 먹은 여자에게 주어진 저주는 무엇인가?〉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남편을 사모하고 다스림을 받는 저주이다. 이 저주에서 해방을 받는 자는 누구인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허물을 보고 무시하며 관계를 깨는 자가 ‘나’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말씀으로 떠져야 한다. 

     

    〈나는, ‘선악과를 먹은 아내들이여!~’ 남편들이여~!라고 회치고 싶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 복종으로 주께 하듯 하라,” “남편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셨다. 부부관계에 시험이 올 때마다 서로의 벌거벗은 몸이 보이지 않는가? 그 허물이 보일 때 서로 무시 하지 않는가? 그 결과 피차 말씀에 불순종 하지 않는가? 한 몸이 되는 구속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선악과 먹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의 아픔이며 고난이다.〉 이와 같은 동일한 저주가 임했음을 알아야 한다. 부부관계에 시험이 올 때마다 서로의 허물을 본 결과 사랑에 실패자가 된다. 거듭나지 못한 부부는 시험이 올 때 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의심하는 정욕 적이고 마귀적인 사랑으로 전략하고 만다. 마귀에게 속은 자신을 발견하라. 영적 교만으로 허물을 보는 내 눈의 들보를 빼야 산다.

     

    〈이성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간음의 영에서 해방을 받는다.〉 첫사랑, 짝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리라, 간음의 영이 그 형상을 입고 내 안에 주인이 되어 부부관계가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다. 상처를 치유 받으려면 사단에게 속고 있는 자신을 알고 회개햐야 한다. 피차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신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는 신부단장이 이루어져 모든 시험을 이기고 사랑의 성공자가 된다. 원망들을 만한 관계에 피차 엎드리는 삶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자.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고 죄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하셨다. 그 결과“ 땅이 저주”를 받았으며,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고” 사는 고난이 시작이 되었다. 수고하여도 그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헛수고라고 너는 흙이니 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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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남편의 허물을 보는 눈으로 속된 말로 바가지를 긁을 때 남편들은 격동을 받아 혈기를 내며 큰 소리를 화를 낸다.〉 그와 같은 영적 상태는, “주매 그도 먹은 지라”에 속하여 선악간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된다. 그 시간은 아내의 허물이 보인다. 그 결과 아내를 사랑할 힘을 잃어버린다. 이와 같이 사망의 삶으로 저주 아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남편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위하여 생명을 주신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아내를 사랑하는 일은 사랑하지 못하고 사단의 격동이 되는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기회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말씀으로 거듭나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케 하신다.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엡 5:26-27)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내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다.〉 “함께 유업을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벧전 3:7)고 하셨다. 

     

    이와 같이 아담의 가정은 비극이 초래 되었지만, 〈창세기 3: 15의 언약의 말씀을 성취해 주셨다.〉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했다. 곧 생명이란 뜻이다. ‘당신은 죽은 자가 아니요 산 자.’라고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는 된다고 산 자의 고백을 했다.  

     

    〈이 시대 역시 시험만 오면 상대방을 탓 하고 마귀 탓을 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맹인이 눈을 뜨는 은혜를 입어야 영적 문둥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 나는 과연 예수 생명 안에서 사랑하는지, 예수 밖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너 때문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율법의 의에 포로 되어 여전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영적 상태가 되어 자기의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맹인인지, 영적 현 주소를 볼 수 있는 눈이 성령의 법으로 떠지시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죄의 근원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는 늦은 비의 구속의 은총을 입어 회개하자. 

     

    〈이 복은 언약이 성취되는 복이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백성에게 성취되어 안식의 복을 받아야 한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믿음이 있는 자는 언약이 성취된다. 그러나 상대방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하려고 용서하려고 하는 수고는 열매 맺지 못하는 헛수고에 불과 하다. 내 율법의 의만 앞세우는 바리새인의 신앙이 된다.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문안했다(약 1:1).〉 여기에서 흩어져 있는 영적 상태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있는 백성들에게 문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왜 시험을 기뻐해야 하는가?〉 내 자신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율법이 생명의 양식이 되는 축복이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며, (마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라고 하셨다. 

     

    〈시험을 받을 때 내면의 쌓인 것으로 인하여 무엇이 나오는가?〉 (마 15:19-20)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셨다. (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천부께서 심지 않은 내면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복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만났을 때 격동되는 내면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원수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힘을 구해야 한다. 그 시간은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는 시간이다. 십자가에서 내면의 주인이 되어 나로 격동케 하는 원수마귀는 멸해지고 나는 새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야고보는, (약 1:3-4)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시험은 내면을 보는 거울이다. 

     

    〈선악과를 먹은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는 시험이 올 때마다 두 마음이 싸운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마다 지혜를 구해야 한다. 곧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말씀으로 떠져야 한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다.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내 뜻과 아버지 뜻을 분별하였어도 내 뜻을 버리지 못하는 영적 상태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 뜻을 선택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생명의 양식이 되는 복을 누가 받을 수 있는가?〉 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 예를 들면, 시험이 올 때마다 선·악과를 먹는 가정은 남편은 아내에게, ‘왜, 나에게 순종 복종으로 주께 하듯 하지 못하는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왜, 나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거야!’하며 말씀으로까지 서로의 허물을 보고 논하는 삶으로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자〉는 시험이 올 때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생명을 주는 사랑을 하지 못해 미안해요,’ 아내는 남편에게 ‘아니에요.’ ‘내가 순종 복종으로 주께 하듯 하지 못해 죄송해요.’라고 서로의 잘못을 시인하는 자다. 자신을 부인하는 자는 선악과를 먹은 정죄의 영에서 해방을 받아 진리의 영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산다. 그 결과 사단의 지배를 받는 가정이 있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가정이 있다. 

     

    〈에덴의 시험을 이긴 가정은 벌거벗었으나 한 몸이 되는 복이다.〉 여기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서로가 허물이 있다는 것이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셨다. 

     

    첫사랑을 회복하여 처음 행위를 가진 믿음의 삶으로 사명을 감당합시다.  


    ■ 첫사랑회복학교〈수시모집〉 (매주 목요, 오전10시~오후5시) 

    ■ 첫사랑회복교재〈1-12과정〉 (매월 첫주 세미나, 월요~목요)

    ★주 소: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길 9번길 9-133번지 첫사랑회복선교센타

    ★유튜브강의 참고 : 김안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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