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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성경 푸는 법(원리)

기사입력 2022.12.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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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성철 목사(원주강성침례교회)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 성경을 잘못 풀어서 멸망으로 간 역사입니다. 

     

    구약시대는 성경을 잘못 왜곡한 거짓선지자들이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했고, 예수님 시대에는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사들이 성경을 잘못 풀어서 거짓된 선생이 되어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했고(마 8:11),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 14~1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거는 당시의 바울서신을 쓴 바울은 베드로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그 당시의 바울서신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바울이 쓴 편지를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오늘날의 기독교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언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거는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바울서신 로마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라는 한 구절로 이신칭의 교리를 만들어 기독교를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2:17).“고 믿음을 정의한 야고보서를 가치 없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애처롭게도 성경의 일부분만을 인정하고 다른 부분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 구원론이 두 가지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인가요. 그 이유는 성경을 잘못 풀었기 때문임을 본문은 증언합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 한 자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멸망(지옥)으로 가게 한 자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본문은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굳세지 못한 자’는 헬라어 ‘아스테리크토이’는 ‘진리에 서지 못한 초신자’를 말하며 ‘무식한 자’는 ‘아마데이스’라는 단어로 “배우지 않는 자‘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초신자의 심정으로 항상 배워야 하는 책‘으로 이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무식한 자란 뜻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종교지도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이나 제자들에게 배워야할 입장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거부하고 배척한 무식한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배워야할까요. 헬라어나 히브리어에 박식한 신학박사나 선생인가요. 절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원어로 성경보고 신앙생활 했던 이스라엘도 성경을 잘못 풀어서 멸망으로 갔습니다(마8:11). 그들은 성경도 박식해서 서기관, 율법사들은 성경을 늘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소경된 인도자로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했음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누구에게 배워야 하나

     

    예수님이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를 대적하는 자리에 선 것은 성경을 잘못 푼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된 대로 오신 메시야를 향해 대적하고 원수로 여길 때 정확하게 메시야를 알아본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시므온은 이미 아기 예수 때 그를 메시야로 정확히 알아보고 그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시므온은 어떻게 아기예수를 정확하게 메시야로 알아보았나요. 성령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5하). 또한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26),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성전에 가보니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온 것입니다. 그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눅2장). 

     

    세례요한 역시 예수님께서 이미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에 메시야를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나요. 세례 베풀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는 그이가 메시야라는 것을 성령님이 알려주신 것입니다(요1:33~34). 세례요한은 그의 어머니 뱃속부터 성령충만했던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언(눅1:15)하고 있으니 그도 역시 성령이 알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온갖 기적과 이적을 보기도 전에 메시야임을 알아본 분별력은 성령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고전2:11).”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지혜의 말씀에 은사와 지식의 말씀에 은사가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은사는 성경을 인용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받은 지혜는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생명같이 여긴다’는 누구나 아는 지식이었지만 적재적소에 인용하니 만민을 놀라게 하는 명판결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은혜가 되도록 잘 인용하는 지혜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의 말씀은사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지식’이란 단어는 세상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성경을 바로 푸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풀어줘야 풀리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성경을 바로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선지자란 한문으로 ‘앞서서 알려주는 사람’을 의미하며, 세례요한이나 시므온도 선지자가 된 것은 성령이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소경된 인도자를 따라 멸망으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암탉이 병아리 품듯 품어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보낸 사람들이 선지자였지만, 그들은 선지자를 돌로 쳐 죽였고, 그 결과 멸망으로 갔음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마23:37).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천국과 지옥을 좌우하는 것은 선지자들에게 배우고 그들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오늘날에도 선지자처럼 쓰시는 종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고전 12:28)


    *성경을 푸는 절대적인 원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셨지만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이단이 생기고 멸망으로 간 이유는 성경을 잘 못 풀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도 성경에 박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오류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방대한 양의 말씀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방대한 글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나 교리를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한 구절씩 따서 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진리가 아닌 비 진리로 멸망으로 간 이유입니다.

     

    성경은 한분이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그분의 말씀입니다. 결코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푸는 절대적인 원리는 성경 전체의 문맥이 맞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그러나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라고 상반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을 통해 주신 성경은 누구라도 주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받아 천국 간다는데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이 아니라 주여주여 라고 애타게 불러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니 도대체 어느 것이 구원의 길이 맞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성경전체 문맥에 맞춰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신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들(서신서)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신약시대 사도들이 쓴 편지들이 성경이 된 것은 그들이 교통이 불편한 그 시대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편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서신서는 누가 누구에게 쓴 것인가요. 그것은 그 당시에 사도들이 이역만리 먼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들입니다. 그 편지에는 교회들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에 맞는 하나님말씀을 글로 써서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신서들은 교회들의 상황에 따라 전한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교회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원파 이단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구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히 9: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죄를 사하는 속죄를 십자가에서 이루셨기 때문에 회개도 필요 없고 결코 구원은 잃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주의의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은 이 말씀에 근거를 둔 것인 듯도 합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한 당시의 서신(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속죄제물 되신 것을 믿지 않고 여전히 황소와 양의 피로 속죄제물을 삼았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그들은 이런 동물제사로 죄 사함 받으려했으므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제는 너희가 그럴 필요 없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셨으므로 그분을 영원히 속죄 제물로 삼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라는 것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것같이 십자가가 미래의 죄까지도 모두 사함 받는 영원한 속죄는 절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우월함에 대해 증거하며 너희가 학수고대하던 메시야가 그분임을 증거하는 서신인 것입니다.

     

    고린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로서 그 당시의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심지어는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1~2)

     

    고린도교회가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중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근친상간 하고서도 회개하지도 않고 그런 자를 성도로 여기는 교회를 향해 바울의 권고는 그런 자를 내쫓으라(출교)는 것입니다. 또한 바닷가의 항구도시들의 특징은 우상숭배이므로 고전 8장,9장은 우상숭배에 대해 권고하는 글이며, 이런 간음죄와 우상숭배자는 결코 천국에 못 들어감을 경고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이 경고에서 하나님나라 못 들어갈 성적인 범죄가 무려 네 가지(음행, 간음, 탐색, 남색)임은 오늘날 성적으로 문란한 이 시대에 주지해서 명심해야할 사실인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쓴 편지로서 당시의 갈라디아교회의 상황은 성령충만한 교회였으나 점점 성령이 소멸되고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였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성령이 소멸되고 은혜가 떨어진 교회의 특징은 육체를 따라 사는 정욕과 분쟁과 혼란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갈 5:19~21). 이 경고에서 은혜가 떨어진 교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열함)은 이 시대의 교회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로서 죄 같지도 않은 이러한 죄들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죄임을 정신 차려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려면 다시 성령을 회복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입을 통해 권고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영생의 나라 천국에 입성하려면 성령을 회복하여 성령으로 하라는 것은 마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성령의 기름을 충만하게 준비하여 성안(천국)에 입성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서신 로마서를 어떻게 보야 하는가  

     

     신학자들은 로마서가 성경의 핵심으로서 계란으로 따지면 노른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예수님보다도 바울을 더 우위에 두는 말로 들리며, 이런 주장이야말로 성경을 잘못 푸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를 알려면 당시의 로마교회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의 로마교회의 상황을 알려면 로마서가 언제 쓰여 졌는가를 보면 주후 57년으로서 이때의 로마황제는 클라디우스황제(A.D.41~54)의 뒤를 이어서 악명 높은 네로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이 두 황제는 기독교를 지독하게 탄압한 황제들로서 클라우디우스황제는 기독교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켰고, 그 뒤를 이은 네로는 로마시내에 불을 지르고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 하여 누명을 씌워 죽이고 박해한 자입니다. 로마의 10대 황제가 자신을 황제 신으로 받들게 했고, 거기에 저항한 기독인들을 무참히 죽였고, 이때에 순교한 기독인들이 50만여 명이 넘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해한 황제들 중에도 최악의 박해자 네로가 통치하던 시기에 로마서가 쓰여 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권세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 그들의 놀라운 믿음을 응원합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이 말씀은 그 당시의 로마교회 성도들이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순교로서 믿음을 지키는 너희의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지 온 세상에 그 소문이 퍼졌다는 것으로서 그로 말미암아 자신은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이 시대의 로마황제들은 자신을 신으로 받들도록 강요했으므로 이 시대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의 인사말은 “가이사는 우리 신입니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거기에 맞서서 “아닙니다 우리의 신은 예수님(하나님)입니다”라고 반박하고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반박은 곧바로 철창행이었고, 굶주린 사자 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영화 쿼바디스의 배경). 영화 ‘바울’에도 보면 사람을 불태워 가로등으로 삼았고, 바울 역시 로마에서 목이 잘려 순교 당했습니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로마서가 쓰여 졌으며, 믿음이 약한 자들은 그들의 위협과 권세 앞에 굴복하는 변절자들도 상당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권면하기 위한 글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죽음을 각오한 주를 시인함과 주의 이름을 부름이 구원받아 천국 입성까지 약속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증거는 만왕의왕 예수님께서는 이런 믿음은 반드시 천국에 입성 뿐 아니라 상급의 주인공이 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10~12).”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가 이런 박해를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만이 될 수 있음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 12~14).

     

    이 말씀은 너희가 박해 속에서라도 육신이 살고자하는 대로 육신대로 가면 반드시 죽고(둘째 사망 지옥), 그러나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살리라는 것은 영생천국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박해시대에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키는 길은 오직 성령으로만 될 수 있음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마치 제자들이 성령충만하기 전에는 모두 배신자가 됐지만 오순절 성령충만으로 모두 순교하기까지 사명감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서신서들은 그 시대의 교회 상황들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성경이 풀리는 것입니다. 


    *권도인가 명령인가

     

    바울은 서신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전 7:6)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권도’와 ‘명령’ 으로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둘은 무슨 뜻인가에 대해 그랜드종합주석을 참고한 결과 ‘명령’은 어느 시대에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불변의 하나님의 법이며, ‘권도’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푸는 절대적인 또 하나의 원리는 ‘명령’인가 ‘권도’인가를 분별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로마서의 시대상황은 주를 시인하면 죽이며 옥에 가두는 박해시대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예수를 입으로 시인만하면 ‘구원’받는 약속은 그 시대에 국한된 ‘권도’에 속하는 구원의 약속인 것이지, 어느 시대에나 이루어지는 “명령‘에 속하는 구원의 약속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마7장 21절이 증거입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들어가리라(미7:21).”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도 ‘권도’와 ‘명령’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또한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한 ‘권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의 기도를 그 자리에서 응답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까지 하시며 이방인의 믿음을 이스라엘의 믿음보다 높이 평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만이 구원받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은 개라고 믿는 그들에게는 그들의 수준에 맞게 눈높이를 맞추신 듯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인들이 거의 누구나 암송하는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천국에 들어가며, 동일한 요한복음 5:24은 예수만 믿으면 심판도 받지 않는다는 약속도 ‘명령’아닌 그 시대에만 국한된 ‘권도’가 틀림없습니다. 그 증거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믿음을 뛰어넘어 예수님께 주여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면 그것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은 요한복음 5장 24절의 믿는 자는 심판이 없다는 말씀과 대립이 됩니다. 결코 주님은 한입으로 두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며 또한 그렇다면 성경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믿는 자마다 영생천국과 다시 심판이 없다는 약속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 시대 역시 박해시대입니다. 그 박해가 얼마나 심했으면 동일한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를 눈을 뜨게 한 기적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맹인의 부모를 찾아와서 묻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참으로 날 때부터 맹인이었었냐 어떻게 눈을 떴느냐”. 그때 그 부모의 대답은 우리에게 묻지 말고 본인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앞 못 보는 맹인으로 태어나 저주스런 삶을 살았던 아들이 눈을 떴음에도 이 기쁜 소식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성경은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라”(요9:22)

     

    이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로마서는 로마황제들의 탄압 속에서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의 박해와 탄압 속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당시의 믿음은 유대사회에서 쫓겨날 것을 각오한 믿음이며, 예수님께서도 그 권세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고, 스데반집사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주었습니다. 나중에 기독인이 된 바울도 그를 죽이려는 비밀결사대까지 있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박해를 각오해야 했으며 그러한 희생을 각오한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권도’인 더 큰 증거는 예수님 믿으면 영생천국(요3:16)과 심판도 없다(요5:2)고 기록한 요한은 그가 기록한 요한일서에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서3:15). 이 말씀은 미움도 살인이며 마음에 미움을 품으면 영생의 주님이 그 속에 거하실 수 없으니 영생천국이 아닌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말씀이며, 요한일서 5장일서에서는 형제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면 그를 위해 기도도 하지 말라고(5:16) 경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자는 비록 믿는 형제라 할지라도 필경 심판받아 영원형벌인 것이니 그를 위해 기도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3장 16절과 5장24절의 약속은 박해시대의 생명을 건 그 시대의 믿음을 말하는 ‘권도’가 틀림없는 것입니다. 


    결 론

     

    그렇다면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일까요.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주여 우리가 주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22절의 ‘그날에’의 ‘그날’은 어느 날일까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임할 최후 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심판의 날에 심판의 대상자들의 믿음을 보십시오. 참으로 대단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능력자들입니다. 아마도 이 범주에 든 사람들은 오늘날에 큰 부흥을 이룬 대형교회 목회자, 성령 받은 능력의 은사자, 그 외 믿음 좋은 성도 대다수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으니 이들은 천국입성이 아닌 심판의 대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모른다고 하셨나요. 그 이유는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법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불법자가 되어 천국입성에서 제한된다는 것이 주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이러한 최악에 불행의 제일 큰 이유는 성경을 잘못 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항상 배우는 자의 자세로 겸손하게 말씀을 따라 가므로 영광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원주강성침례교회 노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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