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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화 사모가 펴낸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 하시는 구속사’ 화제

기사입력 2022.12.0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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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그분의 형상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은 성도의 성전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성도의 완전한 연합으로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아버지와 주 예수님은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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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 하시는 구속사를 낸 동기는? 


    계시록을 새롭게 알고 난 후 가르칠 수 있는 자에게 가르쳤지만 많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겨울 딸 집에 갔는데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지내다 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목사님이 요즘 미혹 받는 사람이 많다고 계시록을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주변에도 계시록을 몰라 병이 났었다는 사모님이 계셨는데 이미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동영상이 아니라 계시록 1장을 가르치듯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두서가 없었습니다. 대본이 필요하여 노트북을 사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는 작은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예수전도단 전도일지를 썼던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다시 알아지는 것에 대한 수정 작업은 있었지만 쓰기 시작하여 약 한 달 1주일 만에 1차 원고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끌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나온 수 많은 요한계시록 관련 책들과의 차이와 특징은? 


    제가 알기로 대부분의 책들은 2장과 3장은 지금 있는 일로 4장부터는 종말의 일들로 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주장들을 가지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의 책의 다른 점은 종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시대 오늘에 대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심판이 아니라 완벽한 구원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보았고, 교회와 함께 구속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단편적인 해석이 아니라 계시록의 주제와 목적에 따라 일관된 구조를 가지고 전체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원어의 뜻을 살피며 신구약 말씀으로 계시록의 상징들을 풀어갔다는 점입니다. 계시록은 난해한 책이 아니라 구원을 말하는 복음의 책이라는 점입니다.


    ▲ 요한계시록을 통해 이단들이 성도들을 가장 많이 미혹한 이유는? 


    위조지폐는 진짜를 모르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제대로 된 해석이 없었습니다. 계시록은 사탄과 그 진영을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시록을 통해 두 진영을 보여 주시며 어떤 싸움이 전개되는지를 말씀합니다. 계시록처럼 정확하게 사탄의 진영과 싸움을 그리고 그리스도의 완벽한 승리와 믿는 자의 확실한 정체성을 말해주는 성경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복음의 엑기스가 계시록이고 전쟁을 위한 전략서가 계시록입니다. 진리를 가리어 혼미케 하는 사탄이 그 말씀을 모르게 갖가지로 방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일관된 계시록의 해석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재앙과 심판에 집중하여 두려움과 종말의 징조를 말하고 있으므로 일반 교회에서는 가르치기를 꺼리거나 인내의 말씀과 교훈으로 가르쳐졌습니다. 이단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것들을 계시록의 말씀을 가지고 열심히 가르치고 전도에 열중합니다. 또 하나는 어디서나 쉽게 유튜브로 누구의 가르침이든 접하여 듣게 되기 때문에 더 쉽고 더 광대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이기에 말씀에 갈급해 하던 성도들과 계시록의 두려움에 잡혀있던 성도들은 많이 미혹을 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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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의 계시록 책의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 


    계시록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삼 년 반 환난, 짐승의 표, 아마겟돈과 재앙과 심판에 대한 불안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성된 구원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다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유산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 어린 양의 신부인 나로 구원받은 자의 정체성을 알게 합니다. 대적인 사탄의 진영의 정체와 그들과의 전쟁, 그리고 그들의 최후를 알므로 승리의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됩니다. 인 나팔 대접을 두려움의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사의 과정으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 666은 무엇인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는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가 손과 이마에 기록되는데 그 짐승의 수는 육백육십육으로 사람의 수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과 육체의 일은 선한 것이 없음 말씀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의 지표 즉 오른손과 이마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의 수는 하나님의 수인 7이 아니고, 사람의 수 6입니다. 그리고 세 번 확증하여 666이라고 하십니다. 확실히 그들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과 육체에서 나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노예로 생각과 행동에 그의 모습 즉 타락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것이 짐승의 표입니다.


    ▲ 144000은?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계 21:17). 예루살렘 성은 열두 지파의 문과 열두 사도의 기초로 이루어진 성입니다. 그런데 성곽을 측량하니 백사십사 규빗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성곽 위에 무한으로 세워질 것이므로 무한을 상징하는 천을 곱하면 십사만 사천으로 인 맞은 자의 수가 됩니다. 즉 그 수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 전체의 수입니다. 이는 모든 믿는 자로 계시록 7장 9절의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 앞에 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와 같은 의미가 됩니다. 모든 구원 받은 자가 십사만 사천입니다.


    ▲ 아마겟돈은?

     

    사탄의 진영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아마겟돈으로 모은다고 말씀합니다. ‘아마겟돈’은 ‘므깃도 언덕’ 입니다. 므깃도 언덕에서는 요시야 왕의 죽음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습니다. 스가랴는 예수님을 보고 애통해 할 것을 그날의 애통과 빗대어 말합니다. 그러므로 므깃도 언덕(아마겟돈)으로 온 천하 왕들을 모은다는 것은, 찌른 자를 보기 위해 영적인 갈보리 언덕으로 모인 자인 믿는 자들과 싸우기 위해 땅의 왕들을 모은다는 말씀이 됩니다. 즉 사탄의 진영과 하나님의 진영의 싸움입니다. 


    ▲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지? 어떻게 사용되면 좋을지? 

     

    계시록을 다른 성경처럼 복음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계시록처럼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완벽한 승리와 믿는 자의 확실한 정체성을 말해주는 성경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복음의 엑기스가 계시록이고 전쟁을 위한 전략서가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은 다른 성경보다 구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갔으면 합니다. 또한 계시록을 바로 알아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양식을 찾아 갈급한 자들에게 충만한 양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 자기 소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책을 쓰게 된 복받은 사람입니다. 2009년 부텨 하나님과의 독대의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잔느 귀용과 로렌스 형제의 영향으로 침묵으로 임재를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새 언약의 복음의 풍성함을 알기 위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찾기 위해 말씀을 공부하고 오랜 시간 접어두었던 방언 기도로 주님 앞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육신은 힘들어 했지만, 나의 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환호성을 지르던 기간이었습니다. 성경 말씀들이 새롭게 깨달아지게 되었고, 결국 계시록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쓰면서도 하나씩 깨달아지는 말씀에 감격하고, 알게 하시고 드러내게 하심에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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