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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훈장(국민포장)수훈 영예 제38회 법무부 교정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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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훈장(국민포장)수훈 영예 제38회 법무부 교정대상 수상

40년 교정·교화 활동, 교도소 및 국내외 소외 계층 20억 이상 기부 공로 인정
‘절대절망 절대희망’ 박순애 전도사

16면 서울.jpg
교정대상 수여자와 서울신문사 고광헌 사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기념사진

 

초등학교 중퇴 학벌로 청송교도소·보호감호소에서 수천명의 재소자들에게 정신교육 강의를 만19세부터 27세까지 약 8년간 3500여 시간을 최고의 인기강사로 섰던 여자… 전국 최연소 교정위원으로 위촉되어 현재까지 40여 년의 세월을 오직 한길 재소자들의 영혼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신문사와 KBS방송국, 법무부가 주관하는 제38회 법무부 교정대상을 수상한 박순애 전도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저는 이 길을 달려오면서 한번도 상받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그녀는 목이 메였다.

 

“청송교도소에 제 나이 열아홉 살에 그들 앞에 처음 섰을 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제가 살아온 삶과 처음 마주친 재소자들의 인생이 운명처럼 제 가슴속으로 들어왔습니다.”

 

16면 청송.jpg
스무살 때 청송교도소 재소자들 앞에서 강의하는 박순애 전도사

 

▲ 어떻게 해서 그 어린 나이에 그 당시 청송교도소·보호감호소의 흉악범들이라는 그들 앞에 서게 되었는지요?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열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했던 엄마가 저를 버리고 도망을 갔어요. 거지와 식모로 모진 고난을 거쳐서 극적으로 엄마를 다시 만났습니다. 엄마의 고향이  청송이었습니다.

 

당시 전기불도 없는 무너져가는 움막같은  흙집에서 엄마와 살며 약초를 캐고 산나물을 뜯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 때 아랫 마을의 이장님이 농촌봉사활동인 새마을청소년회 회원으로 제 이름을 올려서 새마을교육을 받게 해 주었습니다.

 

집에서는 꽁보리밥도 못먹었지만 교육을 가면 전기불이 있었고 쌀이 섞인 밥을 식판에 받아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박순애 전도사는 새마을운동의 청소년단체인 새마을청소년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교육받으러 다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교육을 받을 때마다 모범교육생으로 뽑혔고 마을에서는 탁아소를 운영하며 산골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보모역할을 했다. 청송군 여부회장과 경북도 여부회장까지 역임하였다.

 

그 무렵 동양 최대 규모로 세워진 청송교도소와 보호감호소  재소자 정신교육 강사로 청송군수의 추천으로 가게되었다. 그 때부터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그들이었고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울 때도 재소자들 앞에 서기 위해서 였다.

 

“재소자들의 편지가 하루에 스무통  이상씩 왔어요.”


16면 박순애 전도사 큰사진.jpg

▲ 그 정도로 재소자들에게 인기강사 셨네요?

 

“저는 재소자들 앞에 서면 제 부끄러운 인생이 진실해 졌어요. 그들이 저를 보면 자기들보다 저를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강의시간에 재소자들이 거의 많이 우십니다. 눈물은 인간의 영혼을 씻어주지요. 영혼이 맑아집니다.”

 

박순애 전도사가 만8년의 세월동안 3500여 시간을 재소자들 앞에 섰다는 건 인생의 10대와 20대를 재소자들을 위해 불태웠다는 것이다.

 

“제 인생에 죽음같은 터널을 지나올 때면 재소자들을 생각했어요.” 인생의 푸르른 날을 절망적 환경속에서 살아왔지만 그녀는 밤마다 책과 씨름하며 1천권 이상의 세계적인 역사와 문학, 동양철학, 서양철학 서적을 정독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중요 문장들을 기록한 대학노트만 50권이 넘는다. 틈나는 대로 글을 쓰며 밤마다 하늘의 은하수가 수놓은 길을 따라 자신 안에 깊이 고인 절망의 눈물을 흘려보냈다. 파아란 하늘위에 새 발자국을 새기듯 꿈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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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전도사와 남편 신승균 전도사

 

▲ 내 인생의 뿌리는 하나님

 

청송산골에서 호롱불 아래 영혼의 등불을 켜고 살았던 그 절망의 시간속에서 그녀가 붙잡은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성경전서’를 쓰는 일 이었다. 밤마다 성경 한장 한장을 쓰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소원이 되었다. 처절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믿음은 완성된 현재가 아니라 이루어질 미래이다’라는 진리를 가슴에 담고 바닥치는 환경을 눈물과 기도로 이겨냈던 박순애 전도사.

 

또한 자신도 그러함에도 오히려 절망중에 있는 청송보호감호소 재소자들에게 위로와 용기.그리고 자신이 붙잡고 있는 ‘희망’을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그녀는 약초를 캐며 온 산을 헤매며 다닐지라도 그녀의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을 지팡이로 삼고 일어서고 있었다.

 

밤마다 허물어져가는 초가지붕을 꿰매듯 무너져가는 자신의 마음을 ‘문학’이라는 글 속에 붙잡아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초가집 둘레에는 소나무 숲이었다. 밤마다 그 소나무 아래에서 별헤는 수많은 밤을 보냈다. 인간은 혼자의 시간에 정직의 옷을 입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진솔하게 내어놓고 울었던 시간이 얼마였던가… 하나님의 시간표는 환경을 닫아놓고서 나의 내면의 바닥을 파면 또 바닥이 나오는 그 처절한 환경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닫혀있는 환경일수록 안으로 깊어지는 시간이다. 내 인생의 뿌리는 하나님임을 깊은 기도를 통해 깨달았던 별헤는 밤은 영원한 하나님의 눈빛이었다.

 

박순애 전도사는 1989년까지 청송보호감호자들의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며 신문에 수없이 글을 투고하여 징역보다 더 강한 보호감호의 허상을 세상에 알리는 투쟁가의 삶을 살았다. 1989년 10월 청송교도소·보호감호소의 가을체육대회를 마지막으로 참석한 기억을 회상하며 깊은 감동에 젖었다.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이번 가을체육대회에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감호자들이 너무도 애타게 기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운동회를 시작한지 10여분 늦은 시간에 정문을 통과하여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향해 걸어갔다.

만국기가 파란 가을하늘을 수놓으며  소장의 훈시가 찌렁찌렁 울려퍼질 때 박 전도사는 건물 모퉁이를 막 돌아서 운동장을 향하여 급히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순간 너무도 순식간에 그 넓은 운동장의 둘레를 가득 메운 2천여 명의 재소자들이 이쪽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너무도 놀란 박 전도사는 무슨 폭동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박순애! 박순애! 자신을 향해 환호성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두 발이 얼어 붙은 채 그 자리에서 못박히듯이 서 버렸다. 그리고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박순애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녀의 가슴속에 남겨진 청송교도소와 보호감호소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 후 서울에서 죽음같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된 결정적 동기가 그녀를 응원하던 그 날의 함성이었다. 

 

16면 뉴욕.jpg
뉴욕 프라미스교회 두번째 부흥회 기념사진. 왼쪽 허연행 담임목사, 오른쪽 김남수 원로목사

 

▲ 내 삶의 지표는 ‘오직 한 생명을 위해 영혼을 위해 산다’

 

청송을 떠난 후 1997년.의정부교도소에서 재소자들 앞에 다시 섰던 날. 처음보는 낯선 재소자들앞에서 그녀의 가슴속에 간직되어있는 청송교도소의 감격이 밀려와 그녀는 울고 말았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눈물겹게 살아왔던가…비록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없을지라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는 감격에서 눈물부터 흘렸다.

 

서울에서 7년간의 시간을 얼마나 숨막히게 달려왔던가…처음 두 달을 낯선 예배당에서 1990년 1,2월의 그 추위를 견디며 눈물의 기도로 살았다. 

 

예수는 생명을 바쳐서 믿어야한다. 믿음은 생명이고 영원이다. 기도하는 자는 영원의 세계에 접속한자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된다. 세상에는 기도로 이루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절대믿음, 절대순종, 절대기도, 절대희망이다. 언제나 내 삶의 지표는 하나. ‘오직 한 생명을 위해 영혼을 위해 산다’에 나의 모든 것을 걸었다.

 


▲ 새벽기도는 생명줄이다

 

사람들은 잘나가던 환경이 닫혔을 때 절망부터 한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서 믿음의 길을 가는데도 길이 막힌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지 못한 새 길을 예비해 놓으신 그 길을 보게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하나님앞에 엎드렸다. ‘새벽기도는 생명줄이다’는 마음으로 40일 새벽기도를 눈물로 드리고 있을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 기도와 기적은 함께 간다

 

박순애 전도사는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을 통하여 기적처럼 속셈학원을 개원했다. 이렇게 시작된 속셈학원은 정원이 90명인데 일년만에 180명이 되었다. 아이들이 넘치고도 넘쳤다. 그리하여 1년만에 새롭게 피아노학원을 개원했다. 세번째 학원은 컴퓨터학원이었다. 1992년도 컴퓨터의 붐이 일어나고 있을 때 시대에 맞춘 컴퓨터학원으로 다양한 계층이 컴퓨터학원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미술학원부터 유치부아이들을 입학시켰고 유치원으로 본격적인 유아, 유치원 아이들 300여명에 이르렀다.

 

다섯군데 임대로 학원을 운영하던 그녀는 드디어 땅을 사서 허가를 내고 학원빌딩 건축에 들어갔다. 1995년 3월 31일 개원예배를 드렸다. 총 8개 종합학원과 태권도 체육관까지 하루에 1천명의 원생들이 몰려드는 대형학원이 되었다.

 

‘인생의 모든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새벽기도는 생명줄이다’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당시 종합학원 원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교도소로 달려가는 그 발걸음은 언제나 행복했고 내 삶에 일순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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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균·박순애 전도사 부부가 아프리카 우간다에 설립한 카라멘브교회

 

▲ 믿음의 사람은 영혼을 보는 자다

 

2017년 박순애 전도사 부부는 아프리카 우간다에 유치원과 학교 그리고 카라멘브교회를 세웠다. 단돈 일원도 없이 서울에서 두 달을 살았다는 박 전도사는 ‘물질의 가장 큰 가치는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산다. 

 

열살 때 버려졌던 자신에게 가장 큰 한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도 자신을 고아원에 보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꿈이었다.

 

자신의 삶이 그러하였기에 언제나 그녀의 마음은 소외된 이들에게로 버려진 영혼들에게로 끝없이 흘러갔다. 지금까지 수십년간 교도소 재소자들과 사회에서 약자들.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국내외에 버려진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흘려보낸 기부한 금액이 20억이 넘는다.

 

드린 것이 남는 거다. 심은 것이 남는 거다. 물질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드리는 것이 쉬워진다. 내가 쓰고 남는 것을 드린다면 평생 드릴 것이 없다. 이 것 밖에 없는 것을 드리는 것이 믿음이며 물질보다 생명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믿음이다.

 

물질을 극복하는 비결은 물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물질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 물질을 지배하는 능력을 주신다. 물질을 초월한 삶을 살 때 그 인생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에 얽매여서 물질을 쫓아가며 산다. 믿음이 부요한 자는 이미 물질을 초월한 삶을 산다. 부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믿음에서 온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믿음이 없는 자는 가난한 자다. 그래서 남에게 못준다. 적은 것을 가져도 믿음이 부요한 자는 이미 존재가 채워진 자다. 이것이 인생의 승리이고 믿음의 승리의 길이다. 


16면 박순애 수상 추가.jpg

박순애 전도사 프로필


현 분당제일교회 전도사

현 (사)국제사랑재단 홍보대사

제57회 법의날 대한민국 국민훈장(국민포장)수훈

제38회 법무부 교정대상 수상

법무부 장관 표창장 수상

초등학교 3학년 중퇴학력으로 종합학원장  (원생 1000명)

전국교도소사역 40년(18세부터 교정위원)

KBS 1TV 아침마당 목요초대석 출연

KBS 1TV 다큐멘터리 ‘이것이 인생이다’ 방영 

MBC TV 임성훈과 함께 출연MBC TV      느낌표 출연

MBC TV 9시 뉴스투데이 ‘절대희망 전도사’ 특별방영

CBS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출연

CTS 기독교 TV ‘내가 매일 기쁘게’ 출연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연재

자전에세이 ‘찔레꽃 그 여자’ 출간(1권)

장편소설 ‘푸른솔 붉은집’ 출간(2권)

감동의이야기 ‘절대희망’ 출간(3권)

신앙에세이 ‘기도는 길어도 응답은 순간이다’ 출간(4권)

2001년 2월부터 국내외교회 부흥집회 4000여회 인도


박순애 전도사 인생여정 이야기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소에서 1982년말부터 1989년 말까지 만 8년간 3500여 시간 정신교육 강의를 했다. 의정부교도소에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 6개월 정도에 걸쳐서 1800여 시간을 재소자 정신교육 강의를 했다. 영등포교도소(현 남부교도소)에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 5개월간 1000시간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19세 시작된 교도소사역이 40년을 달여왔다. 재소자들을 강연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 들에게 매달 영치금을 오랫동안 보내고 있다. 때로는 재소자들의 안경을 단체로 맞추어 주고 여름 혹서기 때 생수지원도 해 왔다. 의정부교도소에 재소자들과 직원들의 도서관 개관을 위해 지금까지 3500여 권의 책을 기부하였다.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국내외에 버려진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흘려보낸 기부한 금액이 20억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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