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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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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아버님도 기억납니다.

전태규 목사(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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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전직 대통령 두 분께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이 떠난 뒤에 그가 살아온 삶을 평가한다. 나의 아버님은 밀레니엄 2000년을 앞두고 부름을 받으셨다. 그로부터 나는 매년 아버지 기일에는 아버지와 연관된 글을 써서 하늘나라 메일로 보내드렸고 또한 지상에도 알렸다. 십여년간 빠짐없이 잘해왔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니 내용도 부족하고 열심 또한 식었다.


그런 중에 얼마 전 내가 속한 교단에 수장을 지내신 전, 감독회장님께서 편지를 보내 주셨다.

전 목사님! 코로나 시대에 내외분 강건하시길 빕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전 목사 생각나면서 설교 준비에 다소 도움 되었으면 합니다. 아버님도 기억납니다. 사랑합니다. 김0호 내 기억 속에는 김진호 감독님 하면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카터가 연상된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해비타트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감독님도 임기를 마친 후에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 본부를 세워 홀 사모들을 돕고 자녀들에게 1년에 전후반으로 장학금을 계속 지급하고 있다. 또한 비전교회와 함께하기 운동본부를 설립하여 금년 제21차 신바람 목회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위드코로나 시대, 비전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취지이다.


얼마 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 작은교회의 넉넉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진남제일교회(우종칠 목사)에서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본부에 일억원을 기부하였다는 내용이다. 순간 내 머리에는 두 가지가 스쳐갔다. 우선은 우 목사께서 김 감독님과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또한 감독님이 하시는 일이 평소 귀하게 느껴졌기에 동참했으리라 본다. 곧바로 운동 본부는 사모선교회에 후원금 3000만원을 전달하였다.


감독님이 기억하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아버지 생전에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전 나의 아버지께서 목원대 교역대학원 다니실 때다. 그때 감독님은 마산에서 목회하신 것으로 안다.


훗날 내가 서울에서 개척교회 할 때 동기 김종건 목사가 개척해 성전 짓고 입당예배를 드리는 자리였다. 감독님은 당시 성북지방 감리사로 설교를 하셨다. 당시 설교 메시지는 깔끔하고 핵심만 전하므로 그 인상이 지금까지 내게 깊이 새겨졌다.


그 후 영등포지방 연합집회 오셨을 때도 성전입당한 우리교회를 찾아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내가 협성부흥협의회 대표회장에 취임할 때도 현직 감독회장 재임 중에 오셔서 설교해 주셨다.


또한 감리교부흥단장으로 일할 때 부흥설교집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책을 출간하고 송년 및 출판기념회를 상동교회서 드렸다. 그때 “지도자인가, 지배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주년 기념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종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네” 라는 제목의 추모집을 편집하여 발간하였다. 뒤편에는 평소 아버지와 친분있는 목사님들의 설교문이 들어있다. 이곳에 감독님의 귀한 글이 포함되어있다.


그 후 우리교회 부흥강사로 오셨을 때는 내가 사는 사택을 강사 숙소로 제공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퍽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교회 박00 집사는 강사 저녁식사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처음 나온 분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 메뉴는 돼지 삼겹살인데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강사님이 맛있게 드시지 못하신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그때 나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이 참 진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목사님들 또한 부흥강사 들은 남들은 부러웠을지 몰라도 고생이 퍽 많았다.


부흥회 오셔서 특별대접 한다고 사우나를 모시고 갔다. 한증막에서 미래 감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는 그 말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졌다. 시간은 가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꼭 맞는다. 그래서 꿈이 있는 사람은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독회장 출마할 때도 처음에는 지고 두 번째는 동률이었다. 세 번째 나는 최선을 다해 당선을 도왔다. 결과는 승리하였고 그 자리에서 당선 인사를 하는데 과거 웅변 실력이 나타났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당선 수락 연설이었다.


얼마 뒤 바쁘신 상황에서도 전화를 주셨다. 가장 먼저 전화하신다면서 잘해 보자고 하였다. 훗날 막내 아들이 내 모교에 수시전형에 지원하는데 감독회장 추천서가 필요해 부탁드렸다. 해외 출장 가는 중에도 추천서를 써서 맡기고 가셨다.


그 아들이 후에 학생회장도 하고 선교사를 하고 돌아와 지금은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감독님은 보통은 진보적인 경향을 가지셨다. 그러나 신앙의 깊은 곳에는 보수의 강이 흐른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큰 시련의 위기를 맞았다. 누구도 정부 앞에 바른소리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깃발을 드셨다. 방역 앞장서겠다. 하지만 예배 만큼은 포기 할 수 없다. 

또한 기독교 언론을 통해 “가슴을 찢고 울고 싶습니다” 제하의 글을 통해 감리교단의 하나님을 향한 보수성을 입증하였다. 감독님은 두려워 떠는 내게 용기를 가지라면서 주일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양보할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아버지를 추모하며 일화 하나 소개한다.

나의 아버지는 외동 독자로 일찍이 경찰공무원을 하셨다. 감리교단 양0재 목사님 아버지와는 한 지서에서 근무하셨단다. 가족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6.25을 맞았고 죽음의 계곡에서 어렸을 적 할머니 손잡고 부흥회에 따라가서 은혜받고 나도 커서 분홍 목사(부흥목사) 되겠다고 서원기도 한 것이 다시 살아나 자식이 셋 있는 가운데 신학교 문을 두드렸고, 늦은 나이 (50대)에 대학원을 다니셨다. 


대학원 다닐 때 버스를 타고 할인받으려고 학생증을 보여주면 차장이 얼굴을 쳐다보면서 할아버지도 학생이세요? 이렇게 묻는단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럼 나 학생이지 이렇게 말은 했지만 뒤에 생각하니 할아버지라는 말이 무척 기분이 좋지 않더란다. 그래서 다시 차장에게 할머니라고 부를까 하다가 말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유~머가 있으셨고 가끔은 거짓말도 하셨다.


나, 너희 어머니와 한 번도 안 싸웠다. 자녀들이 본 것만 해도 여러 번 싸우셨는데 사랑 싸움인지 곧 잊으시는가보다. 지금도 마음이 짠한 것은 주로 싸움은 물질 때문이다. 가난은 임금도 못 말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지금 후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산다. 


훗날 아버지가 인도하신 부흥집회에서 은혜받고 많은 주의 종이 나왔다. 그 당시 집회 때 부른 천당가는 아버지의 지정곡이었다. 낮 집회 성경공부는 괘도를 걸어놓고 재림론을 가르치셨다. 나는 아직도 이 분야에는 자신이 없다. 다만 초교파 여러 연합단체서 실무형으로 보람있게 일을 하였다.


지금 우리 집안 후손들 중에는 여러명이 주의 일을 하고 있다. 금년에도 그냥 넘기려는 중에 감독님을 통해 한편의 글을 남겼으니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과거 김진홍 목사님 말이 생각난다. 종교계가 은퇴 문제로 떠들썩 할 때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나 같은 사람은 몰라도 조용기 목사님 같은 사람은 은퇴를 떠나 오랫동안 일하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여기에 덧붙여 어른이 귀하게 느껴지는 이 시대에 감독님 같으신 어른들이 오랫동안 일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이일은 하나님도 손해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내년에 또 소식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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