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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아! 어디 있느냐?”(창 4:9, 창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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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아! 어디 있느냐?”(창 4:9, 창 3:10)

김안나 목사(첫사랑회복선교센터·첫사랑회복선교회 대표)

김안나 목사님.jpg

 

(창 3: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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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죄의 근원이 내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바른 변론을 하자. 아담과 하와의 생애를 통하여 구속사의 원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이 시대 역시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그리고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갈비뼈 하나로 여자를 만드시고 벌거벗었으나 한 몸이 되는 복을 주셨다. 곧 이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다스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다(창 1:28). 그러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에덴의 법을 이처럼 제정하셨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어떠한 시험이 왔는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사단의 시험이었다. 욕심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결과 여자가 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 먹은 결과 정말 서로의 벗었음을 보는 눈이 밝아졌으며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다. 서로의 허물을 보는 눈으로 어떤 결과를 줬는가? 먼저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을 부르셨다. 또 ‘여자야!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나 아담도 하와도 죄를 전가하는 맹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를 시인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가요’라고 죄를 전가했다.

 

〈죄의 근원을 찾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들의 죄의 근원을 일깨워 주시기 전 뱀을 먼저 저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언약하셨다(창 3:14-15). 에덴의 시험에 넘어져 선악과를 먹은 결과를 알게 하셨다. 원수 마귀의 밥이 된 영적 실존의 결과를 알게 하신 것이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와 또 남편을 사모(원하고)하며 다스림을 받는 저주 아래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이와 같이 선악과를 먹은 자신의 결과를 알고 난 뒤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창 3:20). 이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자신의 죄 성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진 결과다. 이긴 자가 되어 산 자의 고백을 하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영생하는 언약이 성취된다.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었다(창 3:20). 그 결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창 3:21). 곧 언약이 성취된 복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보낸 이유는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하신다는 언약을 성취해 주시기 위함이다. 아담과 하와도 이처럼 에덴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죄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시인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죄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일깨워 죄와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언약을 성취해 주셨다. 

 

이 시대 역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까지 허물을 보는 눈이 밝아졌다. 자기 잘못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어 원수 마귀의 밥이 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 죄의 근원의 결과를 일깨워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시대에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신다(롬 8:1-4). 곧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여 처음 행위를 갖는 복을 받자. 


2. “하나님의 사람아! 어디 있느냐?”(창 3:9,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신다. ‘가인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물으신 하나님이,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사람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물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까지 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 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서로의 허물을 보는 눈이 사단의 포로 된 시대는 아닌가?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맹인이 아닌가? 가인 역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피 값을 찾아 주시는 늦은 비의 구속의 사랑으로 죄의 근원을 찾아 주시어 회개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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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값을 찾으시는 하나님〉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 선악 간에 사단의 포로가 되어 상처를 주는 말로 형제를 미워하게 된 결과는 살인자라고 하셨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하나님은 그 피 값을 찾아 주시어 내면에 악의 모양까지 버릴 수 있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신다.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1-12).

 

〈저주받은 영적 상황〉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죄의 근원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자.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가 되면 영혼을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여 예배에 실패자가 된다. 그 결과 시기와 질투의 영 거짓 영에 포로 되어 어린 영혼들에게 상처를 주어 그 영혼을 실족시킨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그 피 값을 찾아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허락하신다. 기도하고 금식해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내게 주지 않는 영적 상태를 진단하며 광야에서 시험만 연속으로 받는 영적 현주소를 깨닫자.

 

〈죄의 근원을 보는 눈을 뜬 가인의 고백〉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영적 현주소를 깨달아 보자. 내 죄를 보는 눈이 언제 떠지는가? 귀가 열려야 한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만이 들을 귀가 열리고 눈이 떠진다. 그리고 입이 열린다. 회개해도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광야의 시험으로 얼마나 생명의 위기를 만났는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 4:15)고 구원을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사도바울도 자기 눈의 들보를 보는 은총을 입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된 사망의 실존을 보게 된 것이다(롬 7:10). 그 결과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롬 7:11)고 사망의 실존을 선악과 먹은 구속의 원리로 시인했다. 곧 에덴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 죄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는 영적 눈이 떠진 것이다.

 

〈맹인이 눈을 뜨는 구속의 섭리〉 

 

시험을 받을 때 내 죄가 보이지 않는 영적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그와 같은 영적 상태에서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먹은 포도주가 다 떨어지는 영적 결말을 준다. 그 결과 어떻게 회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깨달아 보자. 맹인 거지 바디메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르짖었다. 이 소식을 듣는 시간은 시험이 오는 시간이다. 시험이 오는 시간만 내 안에 말씀이 움직이는 시간이다. 시험이 오는 시간은 율법과 복음이 움직이는 시간이다. 곧 그 시간이 예수님이 지나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기에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부를 때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다. 도리어 시험을 주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그러나 맹인 바디매오는 또다시 부르짖었다. 여기에서 인내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빨리 응답을 주지 않을까? 시험은 공부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단을 알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이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바른 것을 구했다. 

먼저 먹은 포도주가 떨어지는 이 시대 역시 시험만 오면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맹인은 아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현실이다. 율법으로까지 여전히 상대방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여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망의 삶을 살지 않는가? 그 결과 나를 부인할 능력이 상실된 이 시대는 시험만 오면 여전히 사단의 격동을 받아 서로의 허물을 논하며 대적하는 삶을 살지 않는가? 맹인 거지 바디메오는 응답을 받았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 그 즉시 눈이 떠졌으며 예수를 좇는 삶을 살았다. 육신의 맹인이 눈을 떴다고 하더라도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다. 

 

영적 맹인이 눈을 뜨는 은혜를 입어야 사도 바울처럼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 “내가 폭행자요 핍박자다.”라고 고백을 할 수 있다(딤전 1:13).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이 시대 역시 율법으로 생명 안에 거하지 못한 영적 현 주소를 알아야 한다. 시험만 오면 상대방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정죄의 눈이 떠져 사망 가운데 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 여전히 “내가 용서하고 내가 사랑하고 산다.”라고 자신의 율법의 의를 앞세우는 바리 새인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창 4:15)라고 계명으로 말미암아 선악 간에 사단의 포로가 된 결과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는 내 눈의 들보를 보는가? 나는 첫사랑 회복의 말씀을 일깨움을 받으며 기록할 때 선악을 아는 일에 사단의 포로 된 사망의 실존을 발견하는 은혜를 입으며 내 눈의 들보를 보게 되었다. 시험만 오면 여전히 비판하고 판단하며 정죄하여 심판하고 재판하는 삶을 사는 교만한 나를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은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시간이었다. 죄를 전가하여 상대방과 마귀 탓만 하고 있는 맹인이 된 나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신 것이다. 그 결과 가인에게 피값을 찾아 주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삶은 상대방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살인자의 현장이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사랑하고 용서하고 사느라 지쳐버린 내 삶의 현장은 율법의 의만 앞세우는 바리새인의 삶이었다. 첫사랑 회복의 구속의 원리는 시험이 올 때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으로 율법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는 복을 받는 은혜가 넘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말씀이 성취되는 첫사랑이 회복되기를 간구하자. 

 

구원은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봉 되어 있다. 왜 그런가?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은 하나님이 허락한 자에게 이루어진다. 십자가의 은총은 복음의 비밀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다(롬 10:13).

 

왜 우리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가? 이 땅에 죽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죽는 자도 있다. 육체의 소욕의 결과와 성령의 소욕의 결과를 통하여 죽는 자와 죽이는 자의 결과를 깨달아 보자. 성경에서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기지 못한 결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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