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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요를 받아 누리고 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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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요를 받아 누리고 전하는 교회

인도네시아 서티모르지역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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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동산교회 및 사역 소개

 

1992년 4월 19일 부활주일에 7년동안 섬교회 목회를 하던 중에 개척할 준비도 없었고 구체적인 기도도 못하고 재정도 없는 여건에서 전남 광양에서 한 성도가 예배처소와 사택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곳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자는 간곡한 요청이 있어 소속 노회 목사와 상의 후에 교회 개척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고향인 전남 광양에서 교회개척을 시작하여 목회사역을 하며 2000년에 다음세대 교육을 위해 1차 교육관(사이딩 건물)을 짓고 교회가 부흥되었고 2007년 축제관(목조건물)을 건축하였다. 2021년 12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속에 현재의 새성전을 건축하여 입당하였다. 

 

교회는 전남 광양시 광양읍 남등3길 13에 대지 1000여평 위에 교육관 168평, 축제관 4층 260평, 새성전 2층 700평 규모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부요를 받아 누리고 전하는 교회’를 영구표어로 세우고 2023년 성구 표어를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로 정하고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온 성도가 하나되어 달려가고 있다.

 

교회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보여준 것은 세상 것에 만족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부요를 받아 누리며 만족하고 마음 속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가득할 때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고 늘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님께서 가정, 직장, 사회안에 임마누엘 하실 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생활이 되어진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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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동산교회만의 차별화된 사역은 무엇보다 예배에 굉장히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의 모양에는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예배 시간이 곧 치유의 시간이고 예배 시간이 곧 변화의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신령과 진정된 예배에 집중하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 예배의 성공이 생활에 성공이라고 믿는다.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회 오전5시, 오전기도회 10시 30분, 저녁기도회 오후 9시 하루에 세번 진행하고 있으며 나 자신부터 개척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밤 강대상에서 기도를 드리고 그 곳에서 수면을 취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도와 양육을 위한 제자사역에도 최선을 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예배에 집중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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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성역 36년째, 교회 창립 31주년째)목회수기(간증)

하나님이 하신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역사

 

지치고 힘들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으며 그때는 오직 의지할 분이 하나님 한 분 뿐이었다.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고 또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이제는 죽어도 신앙 안에서 살아도 신앙 안에서 살겠다고 하는 결단이 그때 아마 생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고 주변에 같이 신앙생활하던 성도들로 하여금 그 당시에 ‘허 선생은 빨리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라’고 하는 부르심이 그분들에게 먼저 있었다. 매번 그렇게 말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또 될 수도 없어서 그래서 계속 거절했었다. 

 

그런데 3~4년 동안 계속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강권적으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의 길을 가라’ 그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아주 강한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셨다. 그때는 강한 은혜를 받아 일어날 수 없고 그냥 걸을 수 조차 없었다. 그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 힘의 은혜가 짓눌렀던 때가 있었다.

 

지금까지 36년 째 목회사역 동안 참 평탄하게 목회를 해왔다고 생각된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늘 도와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안정된 목회를 했다.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너무 무겁다 내가 못하겠다’고 그럴 정도의 어려움은 없었다. 

 

지난날 잠시동안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신 은혜,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큰 은혜를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어떤 방법으로든 감당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섬김의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섬겨야 되는가 하는 부분을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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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986년도 섬교회에 가서 목회를 시작했다. 14년 된 교회, 13대 교역자로 가서 섬 교회를 7년 동안 섬기며 그 지역에 자랑할 만한 교회로 만들었다. 그 후 7년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고향인 전남 광양에서 한 성도의 요청으로 개척을 하게 하셨다. 그때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개척하겠다는 기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신 대로 광양에 와서 개척을 했는데 7년 후에 구 예배당인 교육관을 짓게 하셨고 또 7년 후에는 축제관을 건축하고 7년 후에는 인도네시아의 서티모르의 복음 선교 사역을 하게 하셨고 선교사역 시작한 지 7년 후에 이 새 예배당을 하나님이 건축하게 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역사였다. 

 

서티모르 선교 사역이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아무리 마음을 가져도 같이 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갈 때 우리 교회 장로님, 권사님 몇 분들이 함께 했었다. 어떤 산악지역에 가보니 교회가 예배당을 지으려고 돈이 생기면 시멘트를 사다가 블록을 찍어서 쌓아 올리는데 허리춤까지 쌓아 놨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파파야 나무에 열매가 맺혀 있어 물어봤더니 교회를 짓다가 몇 년 동안 지역 경제가 어려워 더 이상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다 보니 파파야 씨앗이 날아와 교회터를 전부 파파야 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함께 간 장로님이 놀라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이래도 되겠냐 해서 나에게 “목사님 이 교회, 내가 건축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거기서부터 ‘아 우리가 이 지역에 어려운 교회들을 위해 교회다운 교회를 지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그때부터 교회 건축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아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교회를 계속해서 건축하게 하셨을까’ 생각해 볼 때 이 교회를 통해 어려움이 있던 우리 순천노회를 섬기게 하셨고 예장합동 총회 상비부장으로, 이제는 한국교회를 섬기게 하셨고, 세계선교 특별히 인도네시아 서티모르 한 지역을 섬기게 하시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게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섬김이었구나 그렇게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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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역점을 두고 집중하고 있는 서티모르지역 선교사역 소개(시작동기, 사역열매, 비전 등)

 

우리 교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서티모르지역 선교다. 솔직히 선교에 대해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섭리속에서 인도네시아를 알게 하셨고 내가 안식년 때인 2009년에 그 나라의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잠깐 도울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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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서 보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만수 선교사님이 한인교회를 목회하시면서 380여 개의 현지 교회를 개척하신 것에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도에 목사님이 소천하시고 나서 인도네시아를 알게 되었고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을 다녀보던 가운데 서티모르지역을 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티모르 섬은 동티모르와 서티모르로 나누어져 있다. 동티모르는 독립국가가 되었고 서티모르는 인도네시아 NTT주에 속해 있다. 1965년에 대부흥이 있었지만 무슬림 국가로 정책적으로 소외당한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이어서 서티모르지역은 내가 갈 때 해외 선교사가 한 분도 안 계시고 자생하는 기독교 지역이었다. 물론 그전에 1965년도에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땅이기는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지역의 모든 곳이 행정이나 국가적 혜택이 사실 거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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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가서 볼 때 ‘아 이곳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는 곳 이구나’ 하고서 그 지역을 가서 살펴본 이후에 한국에 왔는데 거의 매일 밤 그곳 생각밖에 안 나고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면서부터 시작된 선교가 2014년 3월에 발을 딛고 서티모르를 사랑하는 교회들과 함께 협력해서 지금까지 지속하면서 현지교회를 지난 2022년에 11월까지 65개 헌당했고 2023년에 21개 헌당 예정이며 현재 20여개 교회를 공사 중에 있는 일을 볼 때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역은 선교 사역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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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개 교회건축을 통해 선교의 바람을 일으키는 바탕 위에 앞으로 현지 목회자 양육에도 주력하려고 한다. 처음에 30명으로 시작된 목회자세미나가 85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각 교회마다 3~4명의 평신도리더를 중심으로 일일 300명 세미나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서티모르 권경수 선교사가 주축이 되어 영성훈련, 교회섬김·지킴이, 현지 목회자 관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주일학교 어린이 세미나도 지속하여 진행하고 현지 목회자의 목회 소명의식과 자질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정식 신학교도 설립하여 체계적인 목회자 양성에도 힘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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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에 서티모르 선교지에 들어가 헌당, 건축현장, 세미나 등을 진행하려고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다. 현재 80여 명의 현지 목회자들이 모여 함께 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그 땅의 영적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주인 되는 지역으로 변화되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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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장총부흥사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연임되었는데 단체소개 및 올해 주요 사업계획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한국 장로교 27개 교단의 750만 명의 성도들이 있는 장로교의 교단 부흥사 단체이다. 이러한 단체의 부흥사들이 각 교단에서 부흥사들을 파송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해서 회원이 만들어져서 이제 한국 장로교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섬기면서 개교회의 부흥의 일을 돕고 있는 단체가 한장총부흥사협의회이다. 

 

사실 대표회장에 연임 될 만한 준비나 자격은 없다. 또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자원도 자신이 볼 때는 없는데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이렇게 대표회장에 연임 되었다. 

 

우리 부흥사들은 이전에 선배 목사님들이 그 열정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교회를 살렸던 그 일을 위해서 먼저 부흥사들의 자질을 높이면서 먼저 부흥사들 스스로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실제 자신이 부흥을 경험하고 한국교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감당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부흥사들에게 그러한 힘을 주고 끌어가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지역별 순회 성회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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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새해 비전 및 계획

 

주일예배가 코로나 이전 대비 90% 정도 회복되어가고 새가족 등록도 매주 몇 사람이 하고 있다. 목장지기 훈련을 강화하여 작은교회(셀) 사역에 집중하려고 한다. 

 

올해는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새 성전을 가득 채우기 위한 ‘전도와 양육’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다양한 이웃섬기기 프로그램 및 행사를 병행하여 이웃의 고심을 풀어주는 교회의 내실을 다지는 사역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려고 한다. 

지난해 총회 순교자기념사업부 부장 사역을 마지막으로 대외사역을 거의 내려놓고 이제 남은 목회사역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와 양육, 서티모르 선교에 올인할 계획이다.

 

또 주일예배 말씀선포 후 장로들이 앞으로 나와서 일어선 성도들과 함께 팔과 손을 펴서 치유, 회복송을 부르고 나서 담임목사가 성도들과 함께 간절한 결단치유기도를 통해 온 성도가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치유목회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교회는 모든 장로들이 교구장을 맡아 관리하고 기도하는 사역자화가 되어있으며 주일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예배 전인 오전 8시 모든 교역자, 장로, 각 부서부장들, 방송실장 등이 함께 모여 먼저 스텝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함께 통성기도하고 주일예배 진행내용을 점검확인하여 교회를 지키는 중직들이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여 온전한 주일예배가 드려지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의 : 061-762-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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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목사(허길량 목사)소개

창조주·주권자 하나님께 붙들려 온 인생


허길량 목사의 인생은 한마디로 오직 하나님께 붙들림 받아온 목회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교회를 잘 섬기던 한 집사의 인도로 교회를 다녔던 것으로 시작해서 그당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면 하나님께 붙들려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허 목사는 10대 후반에 참 힘든 시기를 많이 보냈다. 세상 가운데에서 방탕하고 방황한 것이 아니라 불신자 가정에서 예수 믿으면서 환영받지 못하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할 때 남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하지 못했다. 그저 서울 홍제동 굴속에서 기도하며 매일매일 교회 생활을 지냈던 그때가 굉장히 참 비참했고 힘든 시기였던 것 같지만 지금 보면 그때가 지금의 그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 주신 그 은혜를 혼자 간직하고 있기는 너무 마음이 뜨거워서 “하나님 이제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고서 그 일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목회자의 길을 열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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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티모르선교회 회장 허길량 목사

 

 허 목사가 세상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도 있었고 너무 힘들어서 소리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붙들려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창조주, 주권자 하나님께 붙들려 온 인생이라 말할 수 있다.

 

허길량 목사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의 가장 가까운 기도 후원자로 힘을 주며 그의 삶의 멘토가 된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 이미숙 사모다. 허 목사는 그의 두 아들이 목회자의 자녀로서 녹록치 않은 형편에 학원 한번 다니지 못했지만 두 아들 모두 목사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학업의 길을 열어주셨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언제나 책임져 주시는 자녀들로 성장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허 목사의 목회를 돕던 큰 아들 허주영 목사와 며느리, 서울에서 부목사로 열심히 섬겼던 작은 아들 허의영 목사와 며느리는 지금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유학중이며 2명의 손자, 2명 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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