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 맑음속초16.3℃
  • 맑음14.5℃
  • 맑음철원15.1℃
  • 맑음동두천17.6℃
  • 맑음파주16.1℃
  • 맑음대관령13.0℃
  • 맑음춘천15.3℃
  • 맑음백령도15.4℃
  • 맑음북강릉17.8℃
  • 맑음강릉17.3℃
  • 맑음동해17.5℃
  • 맑음서울17.7℃
  • 맑음인천16.5℃
  • 맑음원주15.6℃
  • 맑음울릉도14.7℃
  • 맑음수원16.6℃
  • 맑음영월14.2℃
  • 맑음충주14.5℃
  • 맑음서산15.6℃
  • 맑음울진15.8℃
  • 맑음청주16.0℃
  • 맑음대전16.2℃
  • 맑음추풍령13.9℃
  • 맑음안동11.2℃
  • 맑음상주13.1℃
  • 구름조금포항14.1℃
  • 구름많음군산15.2℃
  • 구름조금대구13.6℃
  • 박무전주15.0℃
  • 구름조금울산15.3℃
  • 구름많음창원15.4℃
  • 구름많음광주15.6℃
  • 구름조금부산16.4℃
  • 구름조금통영15.9℃
  • 구름많음목포15.0℃
  • 구름많음여수13.9℃
  • 구름많음흑산도17.1℃
  • 구름조금완도16.8℃
  • 구름조금고창14.7℃
  • 구름많음순천14.3℃
  • 맑음홍성(예)17.2℃
  • 맑음15.4℃
  • 구름조금제주17.0℃
  • 구름조금고산17.1℃
  • 구름많음성산16.2℃
  • 구름많음서귀포17.2℃
  • 구름조금진주14.4℃
  • 맑음강화16.7℃
  • 맑음양평15.4℃
  • 맑음이천16.1℃
  • 맑음인제12.2℃
  • 맑음홍천14.4℃
  • 맑음태백14.4℃
  • 맑음정선군12.9℃
  • 맑음제천13.3℃
  • 맑음보은13.3℃
  • 맑음천안15.5℃
  • 맑음보령16.7℃
  • 구름많음부여15.2℃
  • 맑음금산13.9℃
  • 맑음16.7℃
  • 맑음부안16.3℃
  • 구름조금임실14.5℃
  • 구름조금정읍16.0℃
  • 구름많음남원13.8℃
  • 구름조금장수14.5℃
  • 구름조금고창군15.8℃
  • 구름조금영광군16.0℃
  • 구름조금김해시14.5℃
  • 구름많음순창군13.3℃
  • 구름조금북창원15.7℃
  • 구름많음양산시16.1℃
  • 구름조금보성군15.7℃
  • 구름조금강진군16.9℃
  • 구름조금장흥16.5℃
  • 구름조금해남17.7℃
  • 구름조금고흥16.4℃
  • 구름조금의령군13.3℃
  • 구름많음함양군13.0℃
  • 구름조금광양시16.4℃
  • 구름조금진도군16.7℃
  • 맑음봉화12.3℃
  • 맑음영주12.2℃
  • 맑음문경12.9℃
  • 맑음청송군10.1℃
  • 맑음영덕14.8℃
  • 맑음의성11.9℃
  • 맑음구미13.6℃
  • 구름조금영천12.4℃
  • 구름조금경주시11.8℃
  • 구름조금거창10.5℃
  • 구름많음합천13.6℃
  • 맑음밀양13.8℃
  • 구름많음산청12.8℃
  • 구름조금거제14.5℃
  • 구름많음남해13.0℃
  • 구름많음15.0℃
기독교의 탁월성 고찰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교⦁칼럼⦁시

기독교의 탁월성 고찰

남기표목사.jpg
남기표 목사(예수문교회)

 

고대 그리스 철학(인간학)의 창시자요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 “탈레스,ταλλης"(B.C, 640~546) 는  신, 이라는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가 인정한 신은 막연한 원시적 정령(精靈) 신,이었습니다. 저 하늘의 태양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각의 정령 신이 있다는 논리를 말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탈레스는 그런 정령 신을 경배할만한 대상으로 믿거나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탈레스는 우주와 만물의 근원적 존재를 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가하면 그 후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ςωχλατης"(BC, 470~399)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적 무지를 깨닫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로 판단하고 “네 자신을 알라”고 역설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로 잘 알려진 "플라톤,φυλατων"((BC, 429~347)은 "이데아, ιδηα" 라는 의미로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선한 지식과 의로운 행함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맥락의 의미에서 불교의 창시자 "석가,釋迦"(BC, 6세기)는 “마음을 수양하고 닦아 부처가 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고 구원이라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비슷한 의미의 뜻으로  "자각,自覺" (스스로 깨달음)을 강조했습니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무지하고 무능력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존재적 본질에 해당하는 참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이 뿐입니까? 유교의 원형 "공자,孔子"(BC, 551~ 479)는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나이 40에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길 만한 경지에 이르럿고, 나이 50에는 학문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자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하늘 천(天) 자에 해당하는 천명(天命)이라는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명령을 인(仁)의 실천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질 인으로 통하는 이  인(仁) 사상 안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덕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 따뜻함, 친절함, 예절, 예의, 효, 정의로움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인(仁)이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공자는 이 인, 사상으로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구원을 이루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또는 석가와 공자의 철학과 윤리는 인간 위주의 인본주의에 근거한 도덕적 윤리적 삶의 완성을 인간 존재의 본질과 구원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AD, 1~33)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동양 철학은 물론 윤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찾아내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참된 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주와 만물의 근원적 존재는 탈레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물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동서양 철학과 윤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 스스로의 선과 의에 해당하는 윤리와 도덕을 완성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믿음으로 믿는 자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영향권에서 그에 합당한 영적 성품으로 사는 것이 인간 존재의 참된 이유이고 목적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했던 사도(제자)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9~1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 안에서 선과 의를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 2:17)는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성향과 성품으로 사는 것을 인간 존재의 근본 본질이고 목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동양의 철학 또는 윤리가 말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는 복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면 이는  자기의 존재론적 의미와 목적이 없는 우주의 미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매우 열심으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 죽은 자와 같고 이 세상에 없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명예, 권세, 부귀, 영화, 도덕, 윤리적 최상의 삶을 누리며 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예수 성품으로 살아가는 삶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런 사람은 여전히 자기 인생의 존재적 의미를 상실한 사람입니다. 이만큼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의 구원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철학적, 윤리적 진리와 구별되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코 이 세상에는 그 어떤 대상(對象)이든 육신의 감각과 시각으로 보이는 대상이 있고 보이지 않는 대상이 있습니다. 소리에도 들리는 소리가 있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식에도 이해가 되는 지식이 있고 이해 안되는 지식이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는 제한된 인간의 지식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지 전능하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의 진리는 제한된 머리 개념의 지식으로 따지고 계산하기 보다는 믿어라는 의미에서 "믿음"이라는 명령법 명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분들은 다른 종교에도 그 속에 깊이 들어가면 결국은 기독교와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외에 그 어떤 종교나 가르침에도 죄인의 죄 사함과 더불어 육체의 부활과 영생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말하는 윤리와 도덕성은 동서양의 철학과 유교에서 가르치는 그 이상의 훨씬 뛰어난 접근성과 현실성이 있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유일무이한 영생의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윤리와 도덕에서도  동서양 철학과 윤리를 능가하는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그동안 기독교에 관해서 오해 했거나 또는 예수를 믿는 문제로 갈등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제 그만 모든 오해와 갈등을 접고 예수주의 구도자(求道者) 심정으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세계를 여행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