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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목회자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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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혹시 목회자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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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규 목사(서광교회)

 

나의 아버지는 6.25사변 전 경찰 9기생으로 사회 첫발을 내 딛으셨다.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대라 공주서 우성 상서리 가려면 만원 버스 차 타기가 어려웠다. 그때 아버지는 경찰관으로 근무했기에 처가집 상서리 사람들은 아버지가 차를 태워주었다. 그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훗날 나의 어머니 덕분에 차를 탔다며 자랑을 하였다. 

 

확실한 것은 아버지와 한 지서에서 근무한 사람 중에는 선배 되신 양총재 목사님의 아버지도 계셨다.

 

그러나 내가 태어날 당시에는 아버지가 직장을 퇴직하고 대전에서 신학교를 다니셨다 

 

그때의 일화 중에 신학교 입학 당시 면접시험을 보는 자리에는 ‘부름받아 나선 이몸’ 찬송가를 작사하신 이호운 학장이 교장으로 계셨는데 서류를 보시더니 자녀가 세 명인데 가정은 어떻게 하고 왔냐고 물으셔서 아버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고 왔다고 했다. 그래도 가정을 신경 써야 할 것 아니냐면서 처음 신학교 입학한 학생에게 학교에서 교회를 소개해 주었는데 그 교회가 지금 대전 유성에 있는 구즉 교회이다. 

 

이렇게 출발한 아버지의 목회는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농촌목회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걸 보고 자란 우리는 목회 길을 희망하신 아버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나는 논산 화정교회에서 열린 이천석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를 통해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 한지가 어언 43년이 되었으니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목사는 영적인 의사로 육신의 의사와 비슷한 점이 있다. 우선을 가운을 입고, 목사가 심방 갈때 대원들과 함께 가듯 의사도 가운을 입고 왕진 다닐 때는 간호사와 함께 다닌다. 왠지 이런 모습이 내게는 좋게만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만약에 목회를 한다면 세련된 목회를 하고 싶었다.

 

1979년 말 20대의 신학생으로 서울 신대방동에서 개척하여 첫 목회를 시작하였다. 나는 세련되게 하려고 성경 찬송을 007가방에 넣고 다녔다. 

 

한번은 어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전도사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기사분이 내게 “혹시, 전도사 아니세요?” 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아십니까? 물었다.

 

그의 대답인즉 음성만 들어도 알아요”, 라고 말한다. 순간 나는 피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전도사로써 삼가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최근에 경험한 이야기다. 나는 이발을 주로 대중 목욕탕에서 하였다. 

 

그런데 지난 3년간은 코로나의 확산으로 목욕탕이 문을 닫아 동생의 소개로 할인 행사하는 미용실을 찾아갔다.  

 

여자 형제분이 사이좋게 일하는데 분위기를 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다.

 

찾아온 손님 중에는 동네 목사님도 계셨지만 내가 목사라는 말은 끝까지 숨겼다.

 

이는 예수님의 산상보훈에 가르침과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 앞에 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 차례 그곳을 방문하였고 금주간 나는 행사를 앞두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또 그곳을 찾아갔다.

 

평소와는 다르게 손님이 한가하였다. 이때 미용사가 내게 몇 번 물어보려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면서 혹시 “목회자 아니세요?” 라고 묻는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더는 피할 곳이 없어 그에게 이실직고 하면서 “나도 벌써 두 형제분이 신앙생활 하는 줄 알았어요”, 라고 하였다.

 

지난번 왔을 때는 동네 목사님이 이발하러 오신 것을 보았다고 하니 그는 “아, 그때 오셨군요, 그러면서 내가 목회자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그는 웃으면서 ”풍기는 인상이 목회자 같고 더욱이 목소리가 그렇다“고 하였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이 내게 목회자의 음성을 주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모든 직업이 다 그러하듯 목사는 목사 다워야지 형사 같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싶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도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자주 들었고, 최근 교회 근처 살았을 때도 이웃분이 내게 ”목소리가 백만불 짜리네요“ 라고 말하던 기억이 있다.

 

요나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니느웨를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갔지만 붙잡혀 다시 본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주님, 이번 일이 내게는 복음의 진보로 나타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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