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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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모든 죄를 씻고, 죄로 인한 5가지 저주를 끊은 보혈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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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모든 죄를 씻고, 죄로 인한 5가지 저주를 끊은 보혈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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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셉 목사(온누리비전교회)

 

 〈서론〉

 

몇 개월 전 주일 새벽에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려고 강단에 서서 찬송을 하려고 하는데 문득 강단 왼쪽에 책이 한 권 놓여 있었습니다. ‘무슨 책이지?’ 하고 그 책을 보았는데, 그 책의 제목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이것이 무슨 책이지?’ 그 책에 대하여 궁금했으나 우선 당장은 새벽 기도회를 인도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 기도회를 드린 후, 개인 기도할 때 이 책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실『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라는 책은 실제로 출판된 책이 아니라 환상 가운데 보인 책이었습니다. 왜 내게 그런 환상을 보였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 책을 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자 깊이 기도했을 때 주님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 책을 써서 성도들이 보혈의 언약과 능력 안에 거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말씀은 제가 해외에 가서 신학생들이나 사역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 먼저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한 아래의 글은 제가 집필 중에 있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라는 책을 간단히 요약한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 온전히 깨닫고 이 마지막 때 보혈의 권세와 능력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저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저주란 범죄한 사람 자신과 그 후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심판의 저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지은 죄에 따라서 지옥의 형벌을 받게 하십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죄에 대한 심판이 없겠지만, 모든 인간들은 죄 가운데 살기 때문에 누구나 죽음 이후에 심판을 받아서(히9:27)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심판의 저주’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2) 질병의 저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도록 유혹한 뱀에게 ‘흙을 먹으라’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창3:14). 그런데 뱀은 쥐, 토끼 등과 같은 것들을 잡아 먹고 살지, 흙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뱀’은 영적으로 ‘마귀’를 상징합니다(계12:9). 뱀에게 ‘흙을 먹으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마귀에게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잡아 먹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뱀 마귀와 그의 수하들인 더러운 귀신들이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서 인간의 몸에 들어와 수 많은 질병들을 일으켜서 고통 가운데 있게 하기도 하고 질병으로 사람들을 죽게도 합니다. 죄인인 우리 모든 인간들은 ‘질병의 저주’ 아래 살고 있습니다. 


3) 마귀의 종으로 사는 저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에게 왕권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다스리라’ 히브리 원어는 ‘라다’인데 이 단어는 ‘다스리다’, ‘지배하다’, ‘밟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에게 ‘왕권’을 주셔서 모든 만물을 발 아래에 두고 다스리고 통치하라는 말씀입니다. 

시8: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 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공동 번역)

그런데 왕권을 받아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왕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권이 마귀에게 넘어갔으며(마4:5-6), 마귀가 세상의 임금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요12:31). 

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왕권을 빼앗긴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죄를 짓고 사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요8:34). 결국 범죄한 인간은, 이 세상 임금인 마귀의 발 아래 짓밟혀서 지배를 받는, ‘마귀의 종 된 저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4) 가난의 저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죄를 짓자 땅에게 저주를 내리셔서 땅에서 가시덤불와 엉겅퀴를 내도록 하셨습니다(창3:17-18). 아담과 하와가 밭의 채소를 먹고 살기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밭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땅의 영양분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채소는 잘 자라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채소들을 많이 수확하기가 어렵게 되어서 가난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땅의 저주’는 곧 ‘가난의 저주’를 상징합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땅의 저주를 내리셨습니다(창4:11-12).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닫아버리시고 비를 내리지 않게 하시거나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함으로써 ‘가난의 저주’가 임하도록 하십니다(대하7:13-14)

그래서 죄 가운데 사는 모든 인간들은 ‘땅의 저주’, 즉 ‘가난의 저주’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5)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저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그 날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7).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날 죽지 않고 무려 930세를 살았습니다(창5:4-5).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아담은 930세나 살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이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는 땅속에 묻혀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가서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같이 거니면서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나(창3:8),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사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신 뒤 하늘로 올라가셨고, 에덴동산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창3:24). 

에덴동산에서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던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게 되었는데, 이는 마치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분리되어 살면서, 아무리 성공한 삶을 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고독 가운데 사는 삶과 같이, 영적인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 사는 삶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저주’ 입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사는 모든 인간들은 심판의 저주, 질병의 저주, 마귀의 종 되어 사는 저주, 가난의 저주,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으로 외로움과 고독 가운데 사는 저주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갈3:13에서는 이런 5가지 저주를 ‘율법의 저주’라고 말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이 5가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들을 속량(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5가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들을 속량(구원)하신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에 대하여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보혈의 권세와 능력을 깨닫고, 실생활에 적용하여 보혈의 권세와 능력으로 모두가 승리하길 바랍니다. 


Ⅱ.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1. 손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  

성경에서 ‘손’은 인간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시24:3-4에서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손이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24:4에서 말하는 ‘손이 깨끗한 사람’은 ‘육체적인 손이 깨끗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은 ‘인간의 행위’, ‘삶’ 등을 상징합니다.  인류 최초로 죄를 지은 하와가 죄를 지을 때 자신의 ‘손’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선악과를 따서 먹었으며, 아담을 죄짓게 할 때도 선악과를 자신의 ‘손’을 사용하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에도 자신의 ‘손’을 사용하여 쳐죽였습니다(창4:8). 

이처럼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에 사용하는 것이 ‘손’이기 때문에 ‘손’은 ‘인간의 행동’을 상징하며, ‘손이 깨끗하다’는 말은 ‘죄를 짓지 않은 청결한 상태’를 의미하고, ‘손이 더럽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지은 죄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나 손 씻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도둑질하는 행위에서 떠났음을 의미하며, 소매치기를 했던 사람이 “나 손 씻었어”라고 말한다면 소매치기하는 행위에서 떠났음을 의미합니다. 

 빌라도가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은 것은(마27:24) 예수님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자신은 아무 죄가 없다는 의미로 손을 씻은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범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손이 더러워졌다고 성경은 말하듯이 ‘손은 인간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사59: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죄를 씻는 보혈의 능력

예수님의 피는 죄를 씻어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요일1:7).  찬송가 252장에서는 우리들의 죄를 씻는 것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9). ‘손’은 ‘인간의 행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서 흘린 피는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인간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손’에서 흘리신 보혈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모든 죄’를 사해주셔서 ‘지옥에 가는 심판의 저주’에서 속량(구원)하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해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2. 채찍에 맞으셨을 때 흘리신 보혈의 능력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질병이 치유를 받도록 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사53:4-5). 

멜 깁슨 감독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참혹한 모습이 나오는데,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의 몸은 온통 피로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흘리신 보혈이 ‘질병의 저주’ 가운데 살고있는 우리들을 속량(구원)하여서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심으로써 사53:4-5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마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성도들이 있으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을 때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질병의 저주에서 속량되었음을 믿고 죄를 자백하며 기도함으로써 치유 받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

 

3. 발에 못 박히셨을 때 흘리신 보혈

예수님의 못 박힌 발에서 흘리신 보혈은, 이 세상의 임금인 뱀 마귀의 발아래 밟혀 마귀의 종으로 사는 우리들을 속량(구원)하셔서 왕권을 회복시켜주심으로써, 이제는 마귀를 발 아래에 두고 밟아버리는 권세를 주시기 위하여 흘리신 능력의 피입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계12:9)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시91:13 네가 사자(벧전5:8)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예수님의 못 박힌 발에서 흘리신 보혈은 악한 마귀와 귀신들과의 영적 전투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능력의 피이므로, 우리들은 마귀와 더러운 귀신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계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4.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을 때 흘리신 보혈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덤불와 엉겅퀴를 내도록 하심으로써 ‘가난의 저주’가 임하도록 하셨습니다(창3:17-18). ‘가시덤불’은 히브리어로 ‘코츠’인데 ‘가시’, ‘가시나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때 ‘가시’로 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요19:2).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하여 ‘가시’로 면류관을 씌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셔서 흘린 피로 말미암아 ‘가시의 저주’, 즉 ‘가난의 저주’가 떠나가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을 때 흘리신 보혈은 ‘가시의 저주’, 즉 ‘가난의 저주’에서 우리들을 속량(구원)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을 때 흘리신 보혈은 ‘가난의 저주가 떠나가고 우리들이 부요하게 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물질 축복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잘 믿게 되면 물질 축복이 따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써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가난의 저주가 우리에게서 떠나가고 부요함의 축복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말3:10), 빌립보 교회처럼 선교 헌금을 드리고(빌4:17-19), 더 나아가 물질로 헌신함으로써 가난의 영들이 떠나가고 물질의 축복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5. 옆구리에서 흘린 보혈의 능력

한 군인이 이미 돌아가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요19: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옆구리에 있는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는데(창2:21-22), 엡5:23에서는 남편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아내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으므로(엡5:23)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신(롬5:14)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신부인 하와는 교회를 상징하며, 성경은 죽은 사람을 잠들었다고 말하고 있으므로(막5:39), 잠든 아담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교회가 나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

둘째, 교회에는 성령 충만의 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의 시작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이 땅 위에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 충만’입니다. 교회를 ‘00제단’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교회의 특징과 가장 유사한 것이 성막이나 성전에 있던 ‘번제단’이기 때문입니다. ‘번제단’에는 3가지 특징이 있는데 ‘피’와 ‘불’과 ‘뿔’입니다. 번제단에는 수 많은 제사들을 통해서 짐승의 ‘피’가 묻어 있고, 흐르고 있으며, 항상 ‘불’이 타오르고 있으며, 번제단의 ‘뿔’을 잡으면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번제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어야 하며, 성령 충만의 불이 항상 타올라야 하고, 죄로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사역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영적으로 ‘성령’을 상징합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이미 돌아가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흘러나온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세워지는 신약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물’을 상징하는 ‘성령’을 받은 마가 다락방의 120명 성도들과 함께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행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어 주셔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는데, 이 ‘성령충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영으로 함께 동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는 저주’를 받았었는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아 에덴동산에서처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회복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린 보혈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 받음으로써 에덴동산에서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의 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성령충만을 받아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축복 가운데 거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1) 예수님의 손에서 흘린 피에서 〈죄사함의 복음〉

2) 채찍에 맞으셨을 때 흘리신 피에서 〈치료의 복음〉

3) 예수님의 발에서 흘린 피에서 〈승리의 복음〉

4) 가시 면류관 쓰심으로 흘린 피에서 〈물질 축복의 복음〉

5) 옆구리에서 흘린 피에서 〈성령충만의 복음〉이 나왔습니다. 

원하옵기는 이 5가지 복음을 모두 믿고 누림으로써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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